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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국기

미테란트 공화국 국기

미테란트 공화국(Republik Mitteland)은 우리 세계의 유라시아 대륙에 해당하는 대륙(Kontinent), 그중에서도 구세계(Alte Welt)라고 불리는 동부 돌출부에 있는 나라이다.[1]

우리 세계의 유럽과 비슷한 입지조건인 대륙 동부 돌출부의 중앙부에 자리한 미테란트 공화국은 북쪽으로는 아틀리아 자유국, 그리고 폭 5~700km의 바다인 지중해를 사이에 두고 해양국가인 아타만 제국과 마주보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라스니아 공화국, 서쪽으로는 옛 에쉬르 제국과 그 서방 속령이 연합하여 건국된 신생국 서부공화국연방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남쪽으로는 넓은 대양(Hochsee, High Sea)이 펼쳐져 있으며, 약 200km 정도 거리를 두고 대 에린 섬과 결속국가 연합왕국의 본토인 에린 섬이 있다.

독립 쟁취로부터 20년밖에 지나지 않은 신흥국인 미테란트 공화국은 현재 대륙 최강국 중 하나로, 국체는 9개 주로 이루어진 연방공화국이다. 각 주는 한때 20여 개의 영방국가로 이루어진 연합왕국이었다가 500여 년 전 주변국들이 미테란트 전역을 군사적으로 강점하면서 영방국가들을 9개 행정지구로 통합[2]한 것이 독립 이후까지 지속된 것이며, 9개 주가 통일정부를 수립하여 외교와 국방 및 징세권의 일부를 위임하는 형식으로 연방을 이룬 것이다.

기본 공용어는 미테란트 공용어이지만, 기존 식민지배국 언어 4개와 한때 미테란트 연합왕국 영방국가 중 최대의 영향력을 가졌던 프리덴란트 지방의 고유언어인 프리덴란트어, 그리고 아틀리아어 역시 공용어로서 각 주마다 지정한 언어를 보조 공용어로서 초등교육과정에서 교육하며, 이외에도 소수인종 언어 모두가 제3, 제4공용어로서 해당 언어의 모어 구사자 이외에도 중등교육과정에서 선택과목으로 교육하고 있다. 특히 엘프어는 구사 가능한 엘프보다 구사 가능한 인간이 더 많을 정도이다.

국가문장

국가문장

국적마크

전군 공통 국적마크


국기는 적-백-흑 3색기 중앙에 국가문장이 수놓인 것으로, 공식명칭은 특별한 수식어가 없는 공화국기(Republikflagge). 국기에서 국가문장을 삭제하면 국민기(Volksflagge), 국가문장 대신 각 주의 문장이 배치되면 주기(Staatsflagge)가 된다.

국가문장과 국화는 노란 백합이고, 약식 문장 국기의 3색으로 동심원을 그린 원형장(圓形章, Kokarde, 영어 Cocarde. 또는 라운델Roundel이라고도 한다)을 병행하여 사용한다. 특히 3색 원형장은 민간만이 아니라 군 및 공직사회에서도 모표 및 신분 증명용 넥타이핀에 사용하고 있으며, 육군과 공군은 장비의 국적식별용 마크로도 사용하고 있다.

미테란트(Mitteland)란 현재의 미테란트 공화국 중부지역에서 널리 쓰이던 중세 미테란트어로 “가운데땅”이라는 뜻이다. 현대 미테란트어로는 미텔란트(Mittelland)가 되지만, 오랜 세월 동안 중세어 단어가 고유명사로서 계속 쓰여 왔다. 주변국들 역시 미테란트 공화국 독립 이전부터 미테란트 문화권 전역을 가리켜 원어 철자를 그대로 자국어 발음으로 읽는 것이 일반적이며, 다만 연합왕국만은 비교적 최근까지도 미테란트 영역 전반을 가리켜 자국어로 미들랜드라고 불렀으나 이도 이제는 사라진 단계이다.


  1. 작중 세계에서는 본래 현재의 대륙 영역만을 세계(Welt)라고 불렀으나, 대륙력 16세기를 전후해서 대항해시대를 맞이한 후 신대륙들이 발견되면서 구세계와 신세계(Neue Welt)로 나뉘며, 구세계를 단순 통칭으로 대륙이라고 부른다. 또한 대륙 하나만을 가리키는 특별한 고유명사는 없다.
  2. 라스니아 왕국과 에쉬르 제국, 아타만 제국은 점령한 영방국가들을 2~3개로 통합하여 황제·황후 또는 왕세자·황태자령으로 선포했고, 연합왕국은 영방국가들을 2개 주(State)로 통합한 후 미드랜드 동맹(Confederation of Mid-land)의 이름으로 연합왕국에 가맹시켜 총독을 파견해 간접 통치했다.

지리와 기후[]

개요[]

미테란트 공화국의 국토는 우리 세계의 유라시아 대륙의 유럽 부분에 해당하는 동부 돌출부의 중앙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 남, 북부 국경에서 주변 3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고 남북으로는 지중해와 대양에 접하고 있다. 지형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갈수록 점차적으로 낮아지는 양상을 가지고 있으며, 이에 따라서 국내에 존재하는 큰 하천 2개는 모두 남해안을 통해 대양으로 이어진다. 이 큰 강들에는 동서로 흐르는 작은 지류들이 상당히 많이 딸려 있어, 과거에는 이를 확장해서 운하로 사용하기도 했으나 각 하천의 지류가 뻗어나가는 방향이 한정되어 있어서, 이것이 미테란트의 각 영방국가들의 교류를 제한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미테란트 북부지역에는 피니에레 산맥이 북부 3개 주 북단에 걸쳐 동서로 가로지르며 뻗어 있고, 피니에레 산맥의 동부 지맥인 슈플레 산맥이 동부 국경선을 따라 남쪽으로 200km 정도 이어진다. 서부로는 딱히 남쪽으로 뻗어 나오는 지맥이 없지만 대신 산맥 폭이 매우 넓어서 약 2~300km에 이르기 때문에, 북부 3개주는 전체의 30% 이상이 산악지역이며, 특히 북서부주는 전체 면적의 50%가 산지다. 그러나 산악지역의 고도 자체는 그리 높지 않아서, 표고는 최대 3,000m를 넘지 않는다. 미테란트 공화국의 최고봉은 북서부와 북부주 사이에 걸쳐 있는 호흐블라센(2,841m).

기후[]

미테란트는 북위 4~50도 영역에 걸쳐 있는 중위도 국가이지만, 남북으로 바다에 접하고 있어 국토 전체가 직접 해양성 기후의 영향을 받거나 간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 일단 서부와 북서부 일대에는 제한적인 대륙성 기후의 징후가 보이며, 남부와 동부 일대는 완연한 해양성 기후이다. 북부는 지중해 때문에 발생하는 계절풍으로 인해 피니에레 산맥에서 제한적으로 푄현상이 발생하고 있어서 여름에는 피니에레 산맥 북부 전체에 걸쳐서 비가 비교적 많이 오는 편이다.

기온은 지역별 편차가 꽤 크지만, 일반적으로 겨울은 긴 대신 그다지 춥지 않고, 여름은 짧은데다 그리 덥지도 않다. 평균 기온은 지역에 따라 1월에 5℃~-3℃, 7월에 18℃~25℃로 평균연교차는 보통 20℃~21℃이다. 강수량은 지역에 따라 최소 800mm에서 최대 1,500mm이며, 주로 북부 및 남부에 상대적으로 강수량이 많고, 중부는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이와 같은 기후 차이 때문에 각 지역에 따라 농업 및 생활양식에서 어느 정도 차이가 있다.

국토의 이용[]

미테란트 공화국의 국토 면적은 335,069㎢로, 우리 세계의 현재 독일연방공화국보다 약간 작은 정도이다. 이 영토 중 약 2% 정도가 하천 및 호수 등이고, 관개수로 및 저수지 등이 차지하는 면적까지 포함하면 국토의 약 3% 정도가 내수면 영역이 된다. 국토의 30%가 농경지로 활용되고 있으며 15%는 영구 목초지이다. 여기에 산악지대를 포함해서 전 국토의 32%가 삼림지대로 분류된다. 대도시 및 산업지대는 전 국토의 15%를 차지하고 있다.

주요 하천[]

라인(Rhein) 강[]

우리 세계의 라인 강과 이름이 같다. 강의 이름은 옛 호빗 언어의 흐르다(Renos)라는 말에서 기인한 것[1]으로, 북동부주 산중의 2곳에서 발원해서 동부주와 중부주 접경 일대인 라인란트에서 합류, 미테란트 공화국 동남부주까지 이어진다. 총연장 1,000킬로미터, 유량은 1,300㎥/s~2,400㎥/s. 지류가 2개 있다.

라베(Labe) 강[]

우리 세계의 엘베 강에 해당하는 강. 이름 역시 엘베 강의 체코어 이름과 같다. 어원은 즈베르그 언어로 ‘강(lave)’. 발원지는 북부주에서 북서부주에 걸쳐 존재하는 10여 개 하천이며, 이들이 남쪽으로 흘러 옛 프리덴란트슈테틴 근처에서 대부분 합류, 베스트그라츠 서쪽을 지나 남서부주까지 이어진다. 사실상 서부공화국연방과 미테란트 공화국의 남부 접경 일대 자연국경선으로 작용한다. 총연장은 900km. 중간에 지류가 여러 개 갈라져 나간다. 본류 하류의 유량은 600㎥/s~1,000㎥/s.

라베 강은 특히 지류가 많아서 운하로 개발, 오랫동안 구 에쉬르 제국의 동방영토 및 미테란트 서부 지역의 주요 교통망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철도 및 도로가 발달한 지금은 사실상 운하 기능을 잃고 있으며, 단지 라베 강 본류만이 아직 운하로서 기능하고 있다.

해안 및 영해[]

미테란트 공화국은 남부에 긴 해안선을 가지고 있고, 북부 역시 아틀리아 자유국 및 아타만 제국의 아틀리아 자치령 접경지대를 제외한 북서부주와 북동부주 일부 지역에 해안선을 가지고 있다. 해안선은 남북 공히 리아스식 해안으로, 따라서 그 길이가 매우 길어서 직선거리로는 700km 정도밖에 되지 않는 남부해안선의 경우 약 2450km이며, 북부 해안까지 합치면 해안선 길이는 약 3,200km나 된다.

영해는 해사 관련 관습법에 따라 독립 이후 지금까지 직선기선으로 6해리(11.11km)를 주장하고 있으며, 여기에 6해리의 접속수역을 주장하고 있다. 최근 대륙붕의 자원 문제가 대두되면서 배타적 경제수역의 선포도 고려하고 있으나, 이에 대해서는 각국 간 의견충돌의 여지가 매우 높으므로 아직은 검토 단계에 불과하다.


  1. 우리 세계의 라인 강 역시 고대 켈트 어의 같은 단어가 어원이다.

주민과 문화[]

개요[]

미테란트 공화국은 2064년 현재 약 42,560,000명의 인구를 가지고 있으며, 인구밀도는 ㎢당 약 130명이다.

특이사항으로, 미테란트 공화국은 남성 인구가 약 130,000명으로 성비가 여성 32에 남성 1이라는 극심한 여초국가이다. 원인은 300년 전부터 독립전쟁 발발 직후까지 기존 식민지배 국가들에 의해 가해진 광역성비조절마법이다.

광역성비조절마법 자체는 독립전쟁 발발 이후인 대륙력 2038년에 작동이 정지되었으나 그 영향은 아직도 남아 있어서, 26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아직 여초상태가 무너질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그나마 신생아의 성비 변화가 완만하게 계속되고 있어서 2064년 현재의 신생아 성비는 12:1 선이며, 2080년을 전후한 시점에는 신생아 성비 1:1, 전체 성비 1:3~1:4를 회복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와 같은 남성의 부족과 핵가족이 불가피한 사회구조 때문에, 미테란트의 여성 출산율은 합계출산율 기준으로 1인당 1.05~1.1명을 넘지 않아 매우 낮은 편이다. 따라서 현재 인구는 독립전쟁 중에 한 차례 증가세를 보인 이후 지난 20여 년 동안 사실상 변동이 없거나 미세하게 감소세를 보여 왔다. 그러나 일단 성비가 정상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인구증가율 역시 완만하게나마 상승하리라고 예측되고 있다.

인종구성 및 분포[]

미테란트 공화국을 포함해서 대륙에는 외견상으로 확실히 구분되는 다수 인종과 유사인류가 존재한다. 이중에서 우리 세계의 코카서스 인종에 해당하는 백인종이 현재 작중 배경이 되는 대륙 동부 인구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 외에 연합왕국과 구 에쉬르 제국을 거쳐 유입된 소수 황인종이 공존하며, 아울러 네 가지 소수인종이 미테란트 공화국 영내에 상당 규모로 분포하고 있다. 이중 엘프, 즈베르그, 호빗의 세 인종은 보통 유사인류로 취급되지만 실은 코카서스 인종의 아종으로 유사인류라고 하기 어렵다.

유일하게 오크만이 진정한 의미의 유사인류로서, 인간과 유전적으로 혼혈 자체가 되지 않는, 인간과는 속에서부터 갈라지는 유사인류다. 작중에서는 네안데르탈인같이 생겼다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실제로는 네안데르탈인이 아니라 그보다 오래된 원인, 정확하게는 호모 에렉투스가 더 진화한 것이다.[1]

미테란트 공화국의
현재 인구 구성
인종 인구
인간 약 38,000,000
엘프 약 3,000,000
호빗 약 1,300,000
즈베르그 약 400,000
오크 약 400,000

좌측 표의 인구는 미테란트 공화국 전체의 통계이고, 각 지역별 인종의 구성 비율로 들어가면 각 주의 지리적 여건에 따라 어느 정도 비율이 달라진다. 이는 대부분 각 인종의 고유문화에 따라 각각 선호하는 거주 환경이 달랐던 데 기인하는데, 대체로 숲이 많은 동부와 중부주에 엘프가, 지하자원이 많고 지형이 험준한 북서부주 일대에 즈베르그와 오크가 상대적으로 많이 거주한다. 그러나 어느 지역이건 보통 백인종의 거주 비율은 거의 90%에 육박하며, 남부 일대는 거의 100%에 달하고 기타 인종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특이사항으로 소수인종 중 호빗은 거의 북부지역에 집중 거주한다. 이는 원래 아틀리아 지역에 주로 거주하던 호빗 상당수가 아타만 제국의 아틀리아 침공을 피해 고향을 등지고 피신하면서 가능한 한 고향 근처에서 살기 위해 미테란트 연합왕국 북부 산악지대에 개척농민으로 정착한 것에서 기인한다.

이후 미테란트 연합왕국 북부지역이 아타만 제국에게 분할 점령당하면서 일부가 호빗 인종의 보호자를 자청한 에쉬르 황제의 보호를 받기 위해 미테란트 서부로 이주했지만 그 수는 그리 많지 않다. 이 시점에선 폭식하는 대신 부지런히 일하고 농업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여겨지는호빗 인구의 유출을 방치하는 것이 아타만 제국의 국익에 합치되지 않는다는 것이 확실해졌기 때문이다.

프리덴란트(Friedenland)[]

프리덴란트는 옛 미테란트 연합왕국의 구성 영방국가들 중 이름이 언급된 단 두 개 영방국가[2] 중 하나이다. 프리덴란트는 북서부주와 서부주의 경계선에 걸쳐 있으며, 미테란트 연합왕국 내에서는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던 영방국가이다. 국호는 미테란트 연합왕국 시기 자신들이 미테란트 연합왕국의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는 방패막이라고 자부하여 자국을 ‘평화의 땅’이라는, 군사적 요충이자 변방으로서는 역설적이랄 수 있는 이름으로 일컬으면서 확정된 것이다. 또한 프리덴란트 지역 출신자나 그 후예는 미테란트 국민임과 동시에 프리덴란트 사람을 자처하곤 한다. 이는 프리덴란트가 미테란트 연합왕국에서도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영방국가였음과 동시에, 미테란트 연합왕국의 각 구성국들과는 비교적 이질적인 민족에 그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프리덴란트는 원래 에쉬르 제국이 성립하기 전 동방에서 유래한 기마민족들이 건국한 국가이다. 말하자면 우리 세계의 헝가리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데, 미테란트 연합왕국의 구성국들 중에서는 가장 먼저 국가체제를 갖춘 케이스. 따라서 미테란트 연합왕국 건국 초기에는 상당 기간 맹주국으로서의 지위를 지켰다.

특히 프리덴란트는 대륙 서부의 대표적인 유사인류인 오크 거주지와 겹치고, 아울러 기마민족이라는 특징이 함께 작용해서, 용병인 오크 보병과 시민 중장기병, 그리고 귀족 기사단의 조합으로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한 것으로도 유명했다.[3] 특히 비슷한 시기 건국된 에쉬르 제국에 의한 서쪽으로부터의 침공을 막아내는 든든한 방패로서의 구실을 오랫동안 수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미테란트 연합왕국이 건국 이후 안정기를 맞이하고 우리 세계의 르네상스 시대와 같은 수준의 문화 및 산업이 싹트자 순수 군사국가에 가까웠던 프리덴란트는 자연스레 경제적으로 낙후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미테란트 연합왕국의 최대 중흥기였던 대륙력 16세기 무렵에는 사실상 미테란트 연합왕국과 에쉬르 제국 중 어느 편에 설 것인가를 가늠할 정도로 사실상 미테란트 연합왕국 내에서도 이단적인 위치에 서게 되었다. 이에는 프리덴란트가 미테란트 연합왕국 중에서도 유일하게 공화국 체제였다는 것도 어느 정도 작용했다.

그리고 그 결과, 에쉬르 제국의 미테란트 연합왕국 침공에서 프리덴란트는 미테란트 연합왕국을 배신하고 에쉬르 제국 편에 섰다. 이때 에쉬르 제국군의 선두에 섰던 프리덴란트 시민군 및 귀족 기사단과 정면으로 격돌했던 것이 바로 에스칼로프 공작령 기사단이었고, 작중에서 나오는 이오니아와 미하엘 기피에는 이때의 원한도 아주 약간이지만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미테란트 분할점령 과정에서 프리덴란트는 민족적, 그리고 정치적 이유로 에쉬르 제국에게 배신당했고[4] 오히려 적극적으로 프리덴란트에 맞서 싸웠던 에스칼로프 공작령보다도 나쁜 대우를 받았다. 이 때문에 프리덴란트는 한 차례 에쉬르 제국에 반기를 들었고, 이것이 최초의 미테란트 독립 시도 사례였으나 예전 배신의 앙금 때문에 미테란트 전역에 걸친 호응이 없어 참패하고 말았다. 심지어 프리덴란트 반란 토벌에 재건된 에스칼로프 공작령 기사단이 가장 열성적으로 참여했을 정도다.

이후 프리덴란트는 이중의 배신이라는 멍에를 짊어지게 되어 오랜 기간 동안 미테란트 독립주도세력에게도 에쉬르 제국에게도 백안시되었다. 프리덴란트가 미테란트 독립주도세력과 본격적으로 화해한 것은 광역성비조절마법에 의해 미테란트 전역이 막대한 피해를 입은 뒤의 일이었고, 그 이후에도 오랫동안 프리덴란트 출신은 알게 모르게 따돌림을 받았다. 특히 미테란트 서부에서의 따돌림은 강도가 상당히 심해서, 중부 유럽에서 유대인이 받았던 것과 비슷할 정도였다.

그 때문에 프리덴란트는 집단 차원에선 적극적으로 미테란트와의 화해를 도모했으며, 그러면서도 개인 차원에선 따돌림에 대한 반발로 옛 풍습을 지키는 데 집착하는 경향도 함께 보이게 되었다. 그나마 독립전쟁 발발 직전을 전후해서는 민족주의를 거의 벗어던질 수 있게 되었고 [5], 독립전쟁 전후세대에 이르러서는 프리덴란트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에 집착하는 경우를 찾아보기가 매우 어렵게 되었다.

종교[]

미테란트 공화국을 비롯한 대륙의 종교는 고유 종교를 가지고 있는 아타만 제국을 제외하고 원래 에쉬르 신화에 기반을 둔 다신교가 대세였으며 특히 천신 숭배가 강했으나, 대륙력 12세기를 전후해서 전반적으로 퇴조하기 시작, 일시적이긴 하지만 엘프들 사이에서 처음 발생했던 유일신 구세주 신앙으로 대체되었다. 그러나 이 유일신 구세주 신앙 역시 미테란트 연합왕국의 멸망을 전후해서 빠르게 기세가 꺾여, 현대에 이르러서는 사실상 종교 자체가 사멸한 상태이다. 다만 이 시기에 정의된 종교적 단어 일부가 현대 언어에까지 살아남아 있다. 특이하게도, 즈베르그와 오크 중 일부는 에쉬르 신화에 근거한 종교적 가치관 주로 천신 우란과 사신 플루토의 관계에 기반을 둔, 죽음을 새로운 탄생의 기반으로서 찬미하는 사생관이다. 을 아직 유지하고 있으나, 여기에서도 특별히 종교적인 의미를 찾을 수는 없이 그저 전사계급을 중시하는 종족 특성 때문에 관습 수준으로 살아남은 것에 불과하다.

문화[]

식문화[]

미테란트의 식문화는 기본적으로 오랜 식민지배 기간 동안 유입된 타국의 식문화를 아무 제한 없이 받아들였기 때문에 매우 다채롭다. 이는 실용적인 것, 좋은 것이라면 일단 큰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보는 미테란트 문화권의 문화적 특성에 기인[6]하며, 이 때문에 기후가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는 농업구조까지 상당부분 재편되었을 정도다.

물론 식민지배 시기 지배국의 영향을 특히 강하게 받은 경향이 있으므로 주에 따른 지역편차도 있으며, 여기에 연합왕국을 통해 교류를 주고받은 연합왕국 가맹국들의 이국적 식문화도 포함되어 있다. 그 결과 현재 식문화는 매우 다양한 식문화가 뒤섞여 혼란스러울 정도이며, 오히려 미테란트 문화권의 고유 식문화는 소수 지역을 제외하면 거의 사멸되었을 정도다.

미테란트 전역에서 일관되게 살아남은 고유 식문화는 대식 문화다. 미테란트 문화권의 전통적인 식사 횟수는 1일 4~5회로, 일일 섭취하는 열량은 평균 2500에서 3000kcal 정도, 육체노동자의 경우엔 4000kcal 이상이었다. 보통 1800~2500kcal 정도가 적정선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과도한 대식이다. 비슷한 수준의 대식문화를 가졌던 조선의 경우 주로 부족한 필수영양소를 쌀의 대량섭취로 커버하던 경향 때문에 발생한 현상이지만, 미테란트 문화권의 그것은 전혀 다른 양상이다. 이쪽은 말 그대로 많은 식사와 다양한 음식의 맛을 즐기는 것이었다.

고유 식문화의 붕괴와 대식 문화 때문에 일부 국수주의적 미테란트 문화사학자들은 ‘미친 듯한 대식을 제외하고 우리에게 주체적인 식문화는 없다’며 개탄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통적인 대식 문화는 독립 이후 본격적으로 갖춰진 국방체계가 배출한 대량의 예비역들을 중심으로 점차 약화되어, 현대에 이르러서는 적어도 식사 횟수는 다른 나라들과 별반 차이가 없는 수준으로 줄었다.

최근 들어서 이세계, 정확하게는 한국의 식문화도 제한적으로나마 전파되고 있다. 하지만 유독 김치는 아예 전파되지 않고 있다.[7]


의복문화[]

의복문화는 우리 세계의 유럽과 유사하며, 이는 기후가 비교적 유사한 탓이다. 다만 지역적 특색은 있어서, 온화한 기후, 특히 20℃ 남짓한 연교차와 더불어 여름에도 25℃ 이상으로 잘 올라가지 않는 기후가 의복의 디자인과 구성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일단 기본적으로 서부의 전통 의복문화는 우리 세계의 슬라브 문화권과 유사하고, 나머지 지역은 중부와 서부 유럽의 것과 유사하다. 이는 각각의 지배국 의복 문화의 영향인데, 서부 지역은 에쉬르 제국의 것이 그대로 전파되었고, 중부와 동부, 남부는 라스니아의 의복 문화가 전파된 것이다. 특히 연합왕국 지배 지역도 의복문화만은 대륙에 소재하고 있다는 특성상 부득이하게 라스니아로부터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주거 문화[]

미테란트 공화국의 주거는 대륙 전체와 공통적으로 우리 세계의 중부 유럽의 것과 유사한 기원을 가지고 있다. 단, 미테란트 공화국은 산업화 및 인구의 과밀 집중 현상이 상당히 일찍부터 시작된 관계로 대륙의 다른 나라들에 비해 공동주택이 비교적 발달한 경향이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일단 각 주의 옛 지배국에 따라 건축양식상 영향 역시 많이 받은 편이어서 지역에 따라 건축물의 외견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는 경우가 많지만 건축물의 내장 및 거주 여건은 대체로 공통적이다.

또한 대륙 전반에 걸쳐 그다지 춥지 않은 기후 때문에 난방이 크게 중시되지 않아서, 이것이 공동주택의 활성화 경향과 겹쳐서 짧은 혹한기 시점에만 사용하는 소형의 이동식 난방기구와 저압·저온의 온수를 이용하는 급탕 중시의 중앙난방이 일찍부터 발달한 편이다.

이런 중앙난방의 보급은 가정에서의 목욕문화 발달로도 이어졌다. 그 결과 오래 전부터 미테란트 거의 전역에서 목욕문화의 기본이 되었던 온천을 기반으로 하는 공동 목욕문화와, 북부지역에 한정하여 발달했던 한증목욕문화가 공동주택 활성화 과정에서 기세를 크게 잃었다.

특히 공중목욕탕은 이제는 일부 관광지에서만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남부주와 남서부주 일대에서는 이것의 왜곡된 흔적으로 남녀혼탕이 기본인 대중목욕탕을 간혹 볼 수 있다. 그에 비해 한증목욕은 지역에 따라 아직도 중요한 목욕 양식으로 남아 있는 곳도 있다.


가족 및 성문화[]

기형적 성비에 기인한 가정관의 변화[]

미테란트 공화국은 약 300년에 걸쳐 강제적으로 여초 상태를 유지해 온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는 인류 사회의 일반적인 가정구조랄 수 있는 부계 혈통에 기반을 두는 가부장제를 실행할 수 없는 결정적인 원인으로 작용, 현재의 미테란트 공화국에서는 실질적으로 가부장적 가족구조가 성립하지 못한다. 이런 문화는 미테란트 전반에 걸쳐 귀족층을 제외한 평민층의 성씨 사용이 아직 보편화되지 않고 있던 시점에 국체를 잃은 데 이어, 시민계급의 등장과 성씨 지칭이 본격화되던 시점에 광역성비조절마법의 폐해로 남성 인구의 급감이 발생한 탓에 성립되었다.

사실 남성 인구의 급감 이전에도 미테란트 문화권은 전반적으로 모계가 가정 내에서 차지하는 입지가 매우 높은 편[8]이었다. 그런 상태에서 남성층이 빠르게 소멸하고 정치, 경제, 사회적 주도권이 부득이하게 완전히 여성의 손에 들어가면서 가부장적 가정구조를 구축할 이유는 물론이고 수단조차 없다시피 하게 되자[9] 자연스레 모계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가족구조가 형성되었다.

또한 지배국의 식민지배로 형성된 착취구조는 부득이하게 미테란트의 노동생산성이 극대화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이는 미테란트 사회 전반을 산업화 구조에 알맞은 형식으로 변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결과적으로 미테란트 문화권은 대륙의 다른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빠르게 농경 중심의 대가족주의에서 벗어나 지역사회 및 인적 커뮤니티 내부에서 제공하는 비교적 충실한 관습적 사회보장 시스템을 바탕으로 유지되는 핵가족 체제를 갖추게 되었다. 또한 청소년의 사회진출연령을 크게 앞당기는 부수적 효과도 불렀다.

이런 환경은 결국 가문 승계 및 이에 수반하는 재산 상속의 문제에서 남성이 절대적으로 취약한 입장에 놓이는 것을 피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는 그저 사회적 입지에서만이 아니라 성문화에서까지도 남성이 소극적인 입장에, 여성이 적극적인 입장에 서게 되는 결과를 불렀다.

이런 상황 하에서 남성의 사회적 지위는 급락하기 십상이었다. 그러나 남성 없이는 국민 자체가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던 기형적 성비, 그리고 식민지배 시점에서 확실하게 발전하기 시작한 각종 정치·경제·문화적 사상기조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적어도 여성에 의한 남성의 일방적 비하만은 간신히 피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우리 세계의 18세기에 해당하는 대륙력 19세기를 전후한 시점에서 현재의 미테란트 문화권 가족구성방식이 확립되었다. 기본적으로 가문의 승계는 모계를 통해 이루어지며, 일부 귀족가문을 제외하고 성씨는 중시되지 않으며 모친의 이름을 성씨로 사용하거나 아예 성씨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 되었다.

이 기간 동안, 남성의 사회적 지위는 일반적으로 절대 강자로서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여성에게 일단 동등한 수준으로 보장받았다. 그럼에도 상대적인 약자라는 사실만은 변함이 없었다. 특히 재산 문제가 심각하여 최소한 노후 생활에서는, 일부 경우 청·장년기에도 상대적으로 숫자가 많고 경제력 역시 우세한 여성 또는 사회보장제도에 의존[10]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는 대륙력 19세기를 전후해서 남성의 전반적 나약화로 이어지면서 평균연령의 급감까지 이어져서, 한때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는 지경에 이를 정도였다.

그런데 이런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수단은 경제적 자립 이외에는 심리적인 차원에서의 정신승리(…)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이런 현실 앞에서 미테란트 남성들은 결국 자포자기 아니면 스스로가 여성들 보기에 부끄럽지 않은 자체 역량을 쌓아야만 한다는 현실인식에 도달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중 자포자기를 선택한 남성은 당연히 도태를 피할 수 없었다.

아무리 사회적으로 여성이 독립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고 하지만, 배우자는 아니라도 자신의 자녀를 낳기 위해 무능하고 무기력한 남성을 선택하고 부분적으로나마 그 노후까지 책임질 정도는 아니었다. 더구나 식민지배 국가 출신의 남성이라는, 권력 측면에서 절대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경쟁자까지 존재하는 이상 남성들로서는 생존을 위한 투쟁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결과, 결국 남성들 역시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일정한 수준 이상의 자립도를 항시 유지하게 되었으며, 피나는 노력의 결과 사회의 몇몇 분야[11]에서는 여성을 거의 구축하다시피 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대신 전반적인 남성 유전자 풀의 위축은 더욱 심해져서 처음엔 5%를 유지하던 성비가 결국 3% 이하로까지 감소했다. 특히 원래 문화적 측면에서 가부장적 요소가 비교적 강하게 남아 있었던 서부 3개 주 일대는 남성인구 감소가 특히 심해서, 해당 지역은 현재까지도 성비가 1~2% 수준에 불과하고, 이 지역의 신생아는 주로 외지 남성과 현지 여성 사이에서 태어나고 있을 정도다.


기형적 성비 하에서의 성문화[]

이처럼 남성이 드문 사회적 특성 때문에 성문화, 특히 이성간의 성적 파트너 선정에 대한 기준과 각각의 사회적 구도 역시 일반적인 양상을 크게 벗어난 양상을 보인다. 일단 과도한 성비 문제로 결혼은 사실상 불가능하며, 사회적 일부다처제조차 성립할 수 없다. 결국 생물학적 차원의 난혼성 일부다처제만이 현실에서 성립하는 유일한 시스템이다.

그러나 다양한 외부 요소가 작용한 결과로 굳어진, 남녀평등이 기본적으로 보장되는 사회적 특성이 부분적으로 작용하여, 생물학적인 난혼성 일부다처제 시스템 하에서의 파트너 선정에서 제한적이지만 사회적 일부다처제 요소가 적용되곤 한다. 특히 남성 한 사람과 관계하는 여성이 같은 조직사회의 구성원으로 서로 일정 수준 이상의 친분을 갖고 있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으며, 이는 자매형 일부다처제(Sororal Polygyny)에서의 결혼대상 선정과 유사한 측면을 갖는다.[12]

또한 성적 결정권, 특히 파트너를 선정하는 과정은 양성의 평등이 비교적 보장되고 있지만, 선택권을 잡는 경우는 소수자인 남성인 경우가 많다. 물론 남성이 내키는 대로 여성과 관계를 갖는다는 것은 아니며, 보통 성적 다수자인 여성의 적극적인 어필을 성적 소수자인 남성이 받아들일지 말지 여부를 결정하는 선에서 그친다.

이는 미테란트의 남녀관계에서 자매형 일부다처제적 요소가 가장 크게 작용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즉, 남성이 어떤 한 여성과 성적 관계를 갖게 되면서, 주로 사회적으로 같은 조직에 속한 다른 여성들 역시 해당 남성의 잠재적인 성적 파트너로서 부각된다는 것이다. 이에는 해당 조직 내에서 그 남성과 처음으로 성적 관계를 가진 여성에 의해 확산되는 경향이 있는데, 자신보다 위계서열상, 또는 연령상 하위의 동성들에게 자신의 성적 파트너를 소개하는 경향을 띤다.

이런 특성 때문에 미테란트 여성에게는 질투라는 개념 역시 아예 없지는 않아도 자유연애가 전제인 그 어떤 개방적 문화권과 비교해도 크게 옅은 편이다. 특히 남녀관계에서 결혼 개념이 배제됨으로서 남녀 간의 연애에서 재산 문제가 차지하는 비중이 급감하고, 또한 남성의 공유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개인의 이성 차원을 넘어 거의 집단행동원리로까지 비화되어 있기 때문에, 남성이 기존 집단 외부로부터 새로운 여성을 유입시킬 경우 오히려 환영하는 경향마저 엿볼 수 있다.


한편, 극단적인 성비 불균형은 그저 난혼성 일부다처제의 정착에서 그치지 않고 양성애의 보편화까지 함께 초래하고 있다. 일단 여성 동성애는 사실상 터부가 없으며, 다만 인구 문제 때문에 사회적 측면에서는 여성 동성애자도 일단 남성과의 관계를 통해 자녀를 두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다. 또한 이성애자인 여성도 성적 욕구를 달래기 위해, 또한 동성이 지나치게 많다는 사실에 역시 자극 요소로 작용해서 대부분 동성애적 심리, 많은 경우 실제 경험까지 갖게 되는 편이다.

이는 이성과의 성적 관계를 갖게 된 뒤에도 이어지는 경향이 크며, 이 때문에 남성 1인과 여성 다수 사이의 집단성교 역시 드물지 않고 이에 대한 터부 역시 딱히 없다. 이에는 앞서 언급된 자매형 일부다처제 시스템과 유사 근친상간 요소가 병행 작용하며, 상당히 높은 빈도로 여성의 성적 판타지로서 의사 자매 내부에서 은연중에 조장되기도 한다. 단, 이와 반대되는 현상, 즉 남성이 수적으로 다수를 점하는 양상의 집단성교는 남성의 부족이라는 명백한 한계 때문에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13]

한편 남성 동성애는 기본적으로 터부시되지만, 지나치게 많은 여성 때문에 역으로 자극을 받아 남성 동성애에 눈뜨는 경우도 적지 않다. 단 남성 자체가 성적 소수자라는 입장 하에서 그나마도 절대적으로 소수일 수밖에 없는 동성애자의 특성상 기본적으로는 이성애자로서 생활하며, 전체 남성의 1% 이하인 순수 동성애자 역시 여성 동성애자와 마찬가지로 최소한의 이성간 성관계는 거의 의무적으로 가짐으로서 양성애자로서 살아가고 있다.

근친상간 문제에 이르러서는, 사전적으로는 분명히 존재하는 단어이나 실질적으로는 거의 의미를 갖지 못하고 있다. 남성 인구가 지나치게 적은 이상 부계에서의 근친상간 가능성은 언제나 매우 높은 편이며, 적어도 부계 혈통상 사촌~팔촌 관계 이내의 근친상간은 사실상 피할 방법이 없는 수준이다. 이 문제에는 앞서 언급된 자매형 일부다처제 시스템도 원인으로서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런 문제로, 혈연관계에서 행해지는 근친상간에 대한 터부는 동성애보다도 훨씬 적다. 오히려 너무 당연한 일이기 때문에 성적 판타지로서의 가치조차 사라질 정도이며, 오히려 의사 자매로서의 관계 성립 쪽이 유사 근친상간으로서 더욱 강력한 성적 판타지로 작용하는 지경이다.

단, 이것은 어디까지나 부계 근친, 특히 사촌 이상 팔촌 이내에서의 근친상간에 한한다. 그 이내 촌수의 근친상간은 약간 복잡한 양상을 띠는데, 일단 남성 인구가 워낙 적기 때문에 쉽게 발생하지 않고, 그나마도 많은 경우 그런 관계라는 사실 자체를 인식하지 못한 채 근친상간 관계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아서 쉽게 두드러지지 않으나 일단 근친상간이라는 인식 자체는 존재한다. 특히 모계 남매 사이의 근친상간은 여성 1인이 자녀 1인 이상을 두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발생 빈도 자체가 매우 낮다.[14]

물론 모계 남매 사이에서도 근친상간에의 터부가 워낙 적은 이상 서로 연애감정을 품는 경우가 생기기는 한다. 다만 서로에게 성적 욕구를 느끼는 경향은 상대적으로 적으며, 실제 성적 관계를 갖는다 해도 일시적인 흥미에 따라 한두 차례 동침하는 데 그치는 경우가 비교적 많다. 대부분의 모계 남매간 근친상간은 플라토닉한 연애관계에 치중하며, 자녀 출산은 더욱 낮은 빈도로 발생한다. 이런 분위기에는 보통 모계 남매 사이의 나이 차이가 6~7년 이상, 심하면 10년 이상까지 나는 미테란트 문화권의 출산 문화가 크게 작용한다.

반대로 부계 남매는 미테란트 문화권 특유의 가족구조 때문에 서로가 부계로서 남매임을 인식하고 있는 상태라 하더라도 사회적으로는 남매라고 부르기 애매한 관계라는 점 때문에 서로의 연애감정에 따라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그나마 많은 경우 자신들이 부계 남매임도 모르고 넘어가며, 간혹 서로가 부계 남매임을 뒤늦게라도 인식하게 되더라도 그냥 자연스럽게 현재 관계를 유지하면서 추가적으로 혈연으로서의 유대를 쌓아 나가거나, 그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어쨌든, 이와 같이 남매간 근친상간 관계에 있는 남녀는 서로가 남매임을 인식한 상태라면 유전병 가능성 때문에 자녀를 얻기 전에 자신의 유전병 병력에 대해 어느 정도 가계 조사를 하는 것이 통례이다. 그러나 2대만 거슬러 올라가도 부계 혈통의 추적이 매우 까다로워지는 미테란트 문화권의 가족 특성상 실질적으로 가계 조사의 의미는 없다시피 하다.

한편, 남매간 근친상간에 비해 부녀 및 모자상간은 상대적으로 터부시되는 편이다. 이유는 주로 연령 차이에 기인하며, 통상 패륜에 가까운 아동성범죄로 간주되고 있다. 단 이것은 자녀가 미성년자(여기에서의 미성년자는 미테란트의 법적 성년인 16세 미만을 의미한다)인 경우에 한하며 만약 자녀가 성인일 경우 성인의 성적 결정권이 보장되기 때문에 남매간 근친상간과 마찬가지로 실질적인 규제는 없다. 그에 비해 모자상간은 발생 빈도에 비해 사회적 터부가 상대적으로 큰 편인데, 이는 보통 과도한 나이 차이 때문에 자녀의 출산에 문제가 생길 수 있어서 생긴 터부지 근친상간이라는 행위 자체가 원인은 아니라고 보인다.

또한 근친상간에서의 동성애는 여성 동성애의 경우 모녀간이든 자매간이든 큰 터부는 없고 적어도 자매간 동성애는 모계에서든 부계에서든 상당히 흔한 편이다. 그러나 남성 동성애는 기본적으로 터부시되고 있는데다 남성 형제가 존재할 가능성도 적다는 점 때문에 형제상간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으며 관계 자체도 비교적 터부시된다. 또한 부자상간은 부녀상간과 마찬가지로 자식이 미성년자라면 아동성범죄로 간주되고, 성인인 경우 실질적 규제는 없으나 역시 터부는 존재한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와 같은 미테란트의 개방적인 성문화는 대부분 자녀의 출산, 즉 미테란트인이라는 민족[15]의 유지 자체를 목표로 한다는 점이다. 즉 미테란트 문화권의 성문화에서 성적 쾌락 추구는 무시되지는 않아도 그리 중시되지도 않고, 출산과 육아가 크게 중시되는 편이다. 따라서 실제 성적 쾌락 추구라는 측면에서는 동 시기의 외국과 비교해서 오히려 보수적인 경향을 띤다.

또한 이런 특성 때문에 피임은 상대적으로 경시되고 낙태는 아예 금기시되고 있다. 다만 핵가족화를 위해 많은 여성이 자녀를 한 명만 두려 하는 경향이 크기 때문에 피임 자체가 이뤄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역시 도구를 사용한 피임은 드물고, 주기조절법을 활용한 피임이 가장 일반적인 피임법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이는 개방적인 성문화에도 불구하고 실제 성적 접촉 자체는 비교적 보수적으로 이뤄지는 데에도 중요한 이유로 작용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과는 별개로, 여성의 성적 결정권이 비교적 강하고 남성이 매우 희귀한 문제가 모두 겹쳐서, 의외로 많은 여성이 생물학적으로 독신주의를 고수하고 있다. 그저 출산 문제에서만이 아니라 성적 쾌락 추구에조차 무관심한 경우인데, 이는 미테란트의 기대출산율을 일정 수준 이하로 억제하는 가장 큰 원인이 되고 있다.

이에 대해 국가나 사회 차원에서 가해지는 차별은 전혀 없으며, 개인의 선택으로서 엄격하게 존중된다. 일정 수준 이상의 출산율을 유지하지 않으면 머지않아 국가가 소멸할 수도 있는 상황임에도 이에 대한 특별한 조치가 없는 것은 사회 전반에 걸쳐 전체주의적 성격이 매우 강함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자유 역시 대등하게 인정되는 미테란트 문화권 특유의 복잡한 민권의식에 기인한다.


미테란트 공화국 독립 이후의 성문화 변동[]

미테란트 공화국 독립 이전에 정립된 위의 미테란트 문화권 성문화는 독립 이후에도 기본적으로 크게 변화하지는 않았으나, 독립 이후 발생한 새로운 외부 요인으로 인해 작은 변동은 몇 가지 발생했다. 그중 가장 큰 것이 독립전쟁과 전시 베이비붐, 그리고 전쟁고아의 대량 발생 및 영아의 해외 유출 문제에 대한 대책으로 실행에 옮겨진 병역 미이행자의 성적 결정권 제한이다.

성적 결정권 제한은 실질적으로는 단순한 사회적 터부, 특히 정부 차원에서 실시하는 일종의 육아정책 캠페인에 불과하다. 그러나 오랜 식민 지배를 거치고 수년에 걸쳐 전 국민의 10% 이상이 희생되는 처절한 전쟁을 치르고 나서야 자신들의 정부를 갖게 된 국가 특성상 국민들의 정부에 대한 충성도가 과도하게 높은 것이 문제가 되어, 그 단순한 육아정책 캠페인의 실제 효과는 예상 이상으로 높은 편이다.

그러나 이성적인 이유로 캠페인에 따른다고 해서 그것에 대해 아무런 불만도 없는 것은 아니어서, 이는 결국 사회적인 성적 억압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특히 성적 호기심이 가장 왕성한 연령대에 이와 같은 비정상적 억압이 가해짐에 따라 독립전쟁 전시·전후세대는 성적 호기심 및 성적 접촉에 대한 적극성이 상대적으로 높아졌다.

이에 억압을 피하면서 성적 호기심을 만족하기 위해, 전시·전후세대는 이전 세대보다 높은 동성애 선호도를 보이게 되었다. 아울러 전후세대 전반에 걸쳐 처음 성적 관계를 갖게 되는 평균 연령이 하락하고, 이전의 피임 관련 금기가 제한적으로나마 무너지는 역효과를 부르고 있다.


또한 독립전쟁에 참전한 서부공화국연방 장병들이 미테란트 여성과의 사이에서 얻은 자녀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아버지로서의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면서 전시세대부터 부계 혈통에 의한 혈연관계 개념이 부분적으로 재조명받는 현상도 함께 발생했다. 이 문제로 부계 자매가 서로를 자매로 인식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늘었으며, 이는 가부장적 개념이 제한적으로 도입은 되어 있으되 실질적으로는 일체의 서열이 없이 상호 대등한 관계인 새로운 가족 개념의 대두로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이런 새로운 가족 개념의 대두는 근친상간의 사회적 터부가 거의 없던 미테란트 문화권 전체에 걸쳐 가부장적 사회의 근친상간 관련 문화 유입을 초래했다. 근친상간에 대한 호기심과 성적 판타지가 전시세대를 중심으로 제한적으로 유입되는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특히 가부장 사회 남성의 성적 환상 영역에 속하는, 근친상간에 대한 금기를 기반으로 발생하는 남매상간 및 부녀상간에 대한 판타지가 미테란트 문화권에 유입되고 미테란트 문화권 특유의, 여성이 자신의 성적 결정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는 성문화와 결합하면서, 최종적으로는 아버지건 오빠건 남동생이건 가리지 않고 마음에 들면 일단 성적 접촉을 제안하고 보는 경향의 발생으로 이어지기조차 한다. 물론 이런 경향은 일반적인 것이 아니며, 작중의 혈연히로인들은 이런 이상심리와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 단, 저런 심리를 자극하는 각종 문화코드와의 접촉이 감정 표출의 원인이 된 경우는 존재할 수도 있다.


아울러 미테란트의 개방적인 성문화가 독립전쟁 이후 한층 개방적이 되면서 주변국들에도 한층 과장되어 알려지게 되었다. 이에 주변국 남성 사이에서 미테란트의 여성은 매우 매력적이고 외국인에게 친절하며 성교에 이르러서는 미친 듯이 적극적이기까지 하기 때문에 언제라도 즉흥적인 성교가 가능하며, 그 어떤 변태행위도 기쁘게 받아들인다는 착각으로도 이어졌다.

이는 외국인 여행객의 유입 증가와 함께 각종 변태행위의 유입으로도 이어졌다. (…) 원래 미테란트의 성적 개방성은 앞서 언급했듯 성비의 기형화로 불안해진 인구유동성 문제에 기인하기 때문에 개방성이 곧 성적 쾌락 추구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었고 따라서 변태적 성행위의 빈도 역시 동성애를 제외하면 도리어 낮은 편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야기가 상당히 달라진 상태다. (…;)

또한 위에 열거된 이유들 때문에 성적 쾌락 추구의 빈도가 올라가면서 피임에 대한 관심 역시 늘어서, 특히 안전한 피임방법 개발 소요가 이미 자녀를 양육하고 있는 20대 초·중반~30대 초반 여성 사이에서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각종 피임법 및 피임도구에 대한 거부감은 피임에 대한 관심에 비해 크게 줄지 않았기 때문에, 새로운 개념의 피임법이 요구되고 있다.

이와 같은 요구에 호응하여 몇몇 제약업체에서 합성호르몬을 이용한 경구피임약의 개발에 착수했는데, 이는 군사적·사회적 측면에서도 상당한 효용성이 기대되고 있어서[16] 국가 차원에서도 상당한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경구피임약의 실용화는 임신 문제로 인한 성적 접촉의 연령제한이 무의미해지는 결과를 부를 것이므로, 아마도 피임약이 등장하고 나면 성문화의 개방성은 한층 더욱 높아질 것이다.



  1. 김한얼이 네안데르탈인으로 착각한 것은 한얼의 고생물학 관련 지식수준이 충분치 않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2. 나머지 하나는 이오니아의 가문명인 에스칼로프 공작령이다. 차후 작중에서 작위를 가진 귀족의 가문명이 작중에 언급된다면, 그 이름의 영방국가가 미테란트 연합왕국에 속해 있었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된다.
  3. 현대 미테란트 육군 기갑부대가 자신들의 직계 조상으로 일컫는 것이 바로 프리덴란트 기병대이고, 미테란트 공군 강하엽병은 프리덴란트 경보병을 직계 조상이라고 일컫는다.
  4. 프리덴란트인은 인종적으로는 에쉬르 제국 황실과 같은 동방에서 전래된 유목민족이나, 서로 오랫동안 적대적 경쟁관계에 있었다. 경쟁에서의 패배로 프리덴란트인이 미테란트에 정착했던 것이다. 또한 프리덴란트인들은 에쉬르 제국이 내세웠던 절대왕정제도에 대해서도 부정적이었다. 프리덴란트인들이 그럼에도 에쉬르 제국 편에 섰던 것은 주로 경제적 이유에서였다.
  5. 이와 같은 따돌림의 해소에는 프리덴란트인 스스로의 노력과 더불어 미테란트 내부의 분위기 전환도 함께 작용했다. 대륙력 20세기 초반 민족 단위의 차별에 대해 자성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대륙력 21세기에 접어들어서는 오히려 차별 속에서도 고유문화를 지켜온 프리덴란트 사람들을 경외시하는 경향까지 생겼던 탓이다. 또한 미테란트가 다민족국가임에도 민족 대립이 사실상 없어진 데는 이 프리덴란트 차별에 대한 자성이 크게 작용했다.
  6. 이런 특성은 미테란트가 당시 알려진 대륙의 중앙부에 위치하고 있고 자원 또한 많아서 주변국과의 교류가 매우 활발했던 데 기인한다.
  7. 이는 작가가 김치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 참고로 한얼이 역시 김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뭐, 이국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못 견디게 그리워질지도 모르겠지만.
  8. 미테란트 문화권은 비록 수적으로는 소수지만 문화 및 정치적 영향력에서는 상대적으로 강대한 소수인종인 엘프의 영향을 크게 받아, 가족 내에서의 일방적인 지배구조가 성립하지 않는 경향이 컸고 가사뿐만 아니라 경제활동을 포함한 대외활동에서도 성별에 의한 차별이 비교적 적은 편이었다. 물론 그럼에도 기본적인 가족구조는 가부장제에 가까웠고, 성씨 역시 부계와 모계의 것이 병행 사용되었으며, 업무 부담도 존재하여 전사 계급은 관습적으로 남성이 맡아 왔다.
  9. 기본적으로 혈통에 의한 가문 구성은 재산의 세습과 직결되어 있다. 많은 문화권에서 성씨가 귀족의 전유물이었던 것 역시 여기에서 기인한다. 특히 부계 혈통이 재산 세습의 근거로 작용해 왔던 데에는 이런저런 요인이 공존하기 때문에 딱히 무엇이 현대적인 가부장제의 등장 원인이라고 지목할 수는 없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상속할 재산이 있는 계급’에나 중요한 것이었고, 그 이외에는 사실 그리 중요한 문제도 아니었다.
  10. 특히 식민지배자 입장에서는 전통적인 전사 계급인 남성의 사회적 약체화를 반길 만한 이유가 많았기에 적극적으로 이런 상황을 조장했다.
  11. 의학과 예술 분야에서는 남성이 절대적으로 강력한 세력을 구축했다. 특히 의학의 경우 인간 남성이 주축이 되는 바람에 부작용으로 마법의학이 크게 위축되는 악영향이 발생하기도 했다. 또한 음악(성악 제외. 성악은 전통적으로 여성이 강세였고 이는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과 미술은 거의 전적으로 남성의 영역이 되었다.
  12. 자매형 일부다처제는 남성이 어느 여성과 혼인하게 되면 그 여성의 다른 자매들에게도 청혼할 수 있는 권리를 얻는 방식이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미테란트의 일부다처 구조는 유전적 측면에선 비자매형이라고 보아야 하나, 사회문화적 측면에서는 자매형이라고 볼 수 있는 여지가 없지 않다.
  13. 물론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고 해서 아예 없다는 것은 아니며, 다수 여성과의 단일 또는 소수 남성 사이의 집단성교와 마찬가지로 딱히 사회적 터부는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권력의 상징 또는 자신의 성적 매력이 뛰어나다는 반증으로 여겨져서, 소수 여성에 한해서긴 하지만 다수 남성과의 집단성교가 강력한 성적 판타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
  14. 물론 모계 남매 사이에서도 근친상간이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주로 서부주 일부 지역에 한한 풍습이긴 하지만 서로 성별이 다른 이란성 쌍생아의 경우 전생에서 사랑을 이루지 못한 연인이 영원히 함께 있기 위해 환생한 것이라는 속설 때문에 성비 기형화 이전부터 근친상간이 사회적으로 보장되었으며 결혼조차 허용되었다. 이런 풍습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15. 같은 언어와 문화를 공유함에도 미테란트 문화권은 소수 예외를 제외하면 민족을 자처하지 않는데, 이는 미테란트 국민들이 민족이라는 개념 자체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륙, 특히 구세계에서의 민족주의는 많은 경우 인종 및 혈연이 중요한 요소로 받아들여지는데, 미테란트 국민은 그 성비 문제 때문에라도 부계 혈통에서의 외부 유입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단, 오해해서는 안 될 것이, 미테란트 국민들이 부정적으로 여기는 이유는 자신들의 혈통에 외부인의 피가 섞인 것을 부끄러워하는 게 아니라 외부인들이 자신들을 혈통에 따라 분열시켜 각자의 민족에 끌어들이려 드는 것을 우려한 것이다. 이는 노르트란트 전쟁 및 독립전쟁 발발 직전에 각각 현실화될 뻔했다. 단 해당 항목에서만 편의상 민족이라는 표현을 썼다.
  16. 경구피임약은 여성의 월경을 조정하는 기능도 함께 갖도록 만들어지게 되므로, 월경으로 인한 컨디션 악화에 기인한 능력 저하를 최소화할 수 있게 된다. 이는 군사적 분야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사회분야에서 여성 활동의 제약을 급격히 감소시킨다.

정치체제[]

개요[]

미테란트 공화국의 국가체제는 비교적 느슨한 연방공화국으로, 입법, 사법, 행정권에서 거의 완전한 독립적 권한을 가진 9개 주가 동일한 헌법을 기본법으로 채택하고 헌법에 따라 구성된 중앙정부에게 국방 및 외교안보정책을 중앙정부에 위임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국호에는 연방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지 않은데, 이는 <국가가 연방 체제라 하더라도 결국 하나의 중앙정부 하에 단결된 하나의 국가라는 것을 강조하는 차원>이다. 이에 미테란트 국민은 자기 나라를 가리킬 때도 연방이라는 표현은 거의 쓰지 않고, 국가(Reich), 국가보다는 공화국(Republik)이라는 표현을 쓰곤 한다. 이런 통일성 강조의 일환으로 각 주 이름 역시 방위에 따라 간소화되어 붙는다. 원래는 건국 당초에 각 주 이름을 정하려 했으나, 각 주를 이루는 옛 영방국가들의 지역 대표들 사이에서 형평성 문제가 제기되어, 결국 방위에 따라 주 이름을 대충 짓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미테란트 공화국의 헌법은 미테란트 공화국 기본법(Grundgesetz für die Republik Mitteland)이다.

중앙정부(Reichsregierung) : 연방 행정부[]

중앙정부는 각 주정부로부터 외교안보 및 직접적인 국방정책과 관련한 모든 권한을 위임받아 이를 행사한다. 여기에 우정정책을 포함한 정보통신정책은 중앙정부의 관할이다. 이외에도 각 주의 법률은 적용 및 개정에 있어서 중앙정부 및 중앙의회의 조정을 받도록 되어 있다. 이유는 각 주별 법규 차이로 마찰이 생길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이를 제어하기 위한 것이다. 그 외의 모든 면에서 중앙정부는 각 주정부의 내정에 직접 개입할 권한은 없이 국가정책의 가이드라인 제시와 각 주 사이의 충돌이 발생할 경우 이에 대한 중재만이 가능하다.

중앙정부의 수반은 국가원수(Reichsoberhaupt)로, 공식 명칭 자체는 일단 국가의 최고 지도자를 가리키지만, 앞서 언급했듯 실질적으로는 제한적인 권한을 가진 중앙정부의 수반으로서 국방 및 외교정책의 입안과 실행을 총지휘하고 그 책임을 지는 문민 정치인이다.

미테란트 공화국의 국가원수로는 독립으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 사람이 사실상 종신으로 재직하고 있다. 이는 건국 당초부터 주변국이 일단 독립은 승인했으나 언제든지 미테란트 공화국을 다시 해체하려 들 가능성이 높다는 상황인식으로 인해 일관된 국방 및 외교안보정책의 수립이 필요하다는 점이 국민 전반에 걸쳐 폭넓게 받아들여진 결과, 국가의 기반이 완전히 다져지고 주변국과의 평화공존이 확실히 가능해지는 시점까지 정부수반을 종신제로 하기로 제헌의회에서 결정하고, 그 자리에서 선출까지 한 결과이다.

그런데 제헌의회는 공식적인 공화국 정부수립 당시의 특수 상황 때문에 국민이 직접 뽑은 대표자들로 구성되지 못하고 전문적인 법학자들과 몇몇 지역의 저명인사 및 독립군 주요 지휘관으로 구성되었다. 이 때문에 제헌의회는 국민의 진정한 민의가 반영되었다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어, 현 국가원수의 집권 정당성은 확실히 보장되지 못하고 있다.

기본법상으로 국가원수는 국가의회(Reichstag)에서의 투표로 선출되는 간선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임기는 8년이고 2회 연임이 가능하다. 현재의 국가원수 크리스틴 하렐은 20년째 재임 중이므로 3회 연임하는 셈인데, 앞서 언급된 한시적 조치 때문에 의회에서의 국가원수 선출 투표는 아직까지 1회밖에 실시되지 않았다.


국가원수는 각 성(Ministrium)의 장관을 임명, 내각을 구성하여 평시 국가를 구성한 주 전체의 정책 통일성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관리감독기능을 수행한다. 또한 헌법에 따라 이들 장관들로 구성된 국무회의(Reichsrat)를 개최, 중앙정부가 수립한 각종 정책을 국무회의에서 심의하고 이를 집행한다.[1] 국방성과 외무성을 제외한 각 성은 담당 분야에 따라 각 주정부에 대한 각 분야별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이 기본 임무이므로, 실질적으로는 행정부처의 장으로서보다는 국무회의 의원으로서의 임무가 더욱 중요하다.

또한, 국가원수는 국방장관과 외무장관, 육·해·공군장관, 각 주 주지사, 국가의회 의장, 공화국군 총사령관[2], 공화국군 통합정보국장, 그리고 필요에 따라 공화국군 총사령부 참모총장과 해군 총사령관, 공군 총사령관, 해·공군 작전사령관이 자문역으로 참가하는 국가안전보장회의(Reichssicherheitsrat)[3]의 의장으로서 국가안보와 관련된 중요하고 시급한 사항을 회의에 상정, 논의하고 필요한 정책을 수립하여 국무회의에 제출, 이를 실행할 권한을 가진다.

아울러 국가원수는 기본법에 의거, 국가수반 자격으로 군 통수권을 행사하며, 국방장관을 참모장으로 하여 공화국군 총사령부와 산하 공화국군 총참모부의 직접 보좌를 받아 통수권을 직접 행사할 수 있다. 그러나 통상 군사작전의 직접적인 통제는 국방장관을 통해 공화국군 총사령관에게 위임해서 행사한다. 국가원수가 통수권을 직접 행사할 경우에도 공화국군 총사령관 및 총사령부에 한해서 전략적 차원에서의 통수권 행사만 가능하며, 일선 부대의 작전 및 전술 차원에는 개입할 권한이 없다. 단, 공화국군 총사령부 및 산하 주요 지휘부는 중앙정부가 수립한 국가전략 및 군사전략에 복종할 의무가 있기 때문에 군의 독주는 원칙적으로 발생할 수 없다. 군 수뇌가 주요 구성원인 국가안전보장회의가 단순 자문기관에 불과한 것 역시 이 문제 때문이다. 이의 부작용으로, 국가원수 및 국무회의가 잘못된 국가전략 및 군사전략을 입안할 경우 이를 저지할 마땅한 수단이 군에 없다는 결점이 있다. 국가원수가 일단 종신제로 유지되고 있는 이유가 국방정책에서 군과 문민정부 사이의 권한 관계 정립에 딜레마가 컸던 탓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외의 문제에서 중앙정부의 권한은 상대적으로 취약한 편이다. 각 주의 내정에는 직접 개입할 권한이 없으며, 국방 및 외교안보정책의 수행을 위한 재원 역시 중앙정부에는 직접적인 권한이 없이 일단 재무성에서 예산안을 편성, 각 주의 경제력에 따라 이를 분배한 것을 각 지방정부 의회의 심의를 받아 지급받는 식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4] 경찰권 역시 중앙정부는 오로지 공안업무를 수행하는 공안경찰, 그리고 철도경찰과 해양경찰세력만을 통제할 수 있다. 검찰 역시 국가검찰은 공안 분야에만 개입할 수 있다.

국가의회(Reichstag)[]

국가의회는 미테란트 공화국의 중앙 입법기관으로서, 입법부로서 중앙정부 관련 법률의 제청 및 의결, 공표권을 가진다. 또한 헌법의 개정 권한, 국가 간 조약의 체결 및 비준에 대한 동의권을 가지고 있다. 재정에 대한 권한으로는 중앙정부의 예산지출에 대한 감독권한과 국채발행에 대한 동의권을 가진다. 아울러 3권 분립의 원칙에 따라 중앙정부의 국정 전반에 대한 지속적인 감시·비판 권한을 가진다. 이 감시·비판 대상에는 국방 및 외교안보정책만이 아니라 단순히 각 주정부에 대한 가이드라인 제시에 불과한 중앙행정부처의 국정기획안 역시 포함된다.

국가의회 의원은 소선거구제에 따라 선출되며, 임기는 4년이다. 의석은 총 300석이며, 한국과 같은 비례대표 제도는 없이 전원 직접선거에 의해 선출된다. 국가의회 의원의 권한과 의무는 일반적인 의회 의원의 그것과 마찬가지이며, 의회는 한국과 달리 연중회기제도를 채택하여 휴일을 제외하고 매일 의회가 열린다. 따라서 불체포특권 역시 상시 유지되며, 대신 국가안보와 직접 관련된 문제의 경우 확실한 증거가 있을 때에 한해서 국가의회 의장과 국가원수의 동의가 있을 때 일정 인원수에 대해 한시적으로 박탈될 수 있다. 단, 의회 개회 정족수가 미달될 만큼 체포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헌법재판소(Verfassungsgerichtt)[]

한국의 헌법재판소와 마찬가지 기관. 기능은 차이가 없고, 재판관 임용 역시 한국과 마찬가지로 국가의회와 미테란트 공화국의 최고법원인 국가중앙법원, 그리고 국가원수가 임명한다.

법원(Gericht)[]

미테란트 공화국의 법원은 국가의 3권 중 하나인 사법권을 행사하는 기관으로서, 기본적으로 각 주의 지방법원(Bezirkgericht)과 주법원(Staatsgericht), 그리고 대법원에 해당하는 공화국 최고법원(Obersten Gerichtshöfe des Republik)의 3단계로 구분된다. 재판은 3심제를 채택하고 있으나, 반드시 3심 상소가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다. 원칙적으로 공화국 최고법원은 중앙정부가 분쟁의 일방인 사건과 각 주 정부 및 다른 주 주민 간의 분쟁, 국제법과 관련된 분쟁(전쟁범죄의 항소를 포함), 해사(海事)분쟁을 담당하며, 이외의 사항에 대해 주 고등법원에서 올라오는 항소는 쉽게 받지 않는다. 항소를 받은 경우에도 유·무죄 여부의 판단에 그치며, 형량에 대해 조정 권고를 지방법원에 할 수 있는 정도에 그친다. 또한 최고법원의 판결은 주법에 직접 영향을 끼치지는 못한다.

각 주정부(Staatsregierung)와 주의회(Staatstag)[]

각 주 정부는 기본적으로 어느 국가의 주라기보다는 거의 미테란트 공화국 중앙정부의 피보호국에 가까울 정도로 독립적인 입법·사법·행정권을 유지하고 있는 구성원이다. 어떤 의미로 미테란트 공화국은 실은 국가연합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 다만 미테란트 기본법을 헌법으로 하고 국방과 외교를 철저하게 중앙정부에 위임하고 있으며, 각 주 정부는 군사 및 외교문제로는 중앙정부에 의견 제시 이외에는 아무런 권한이 없기 때문에 완전한 자주독립 상태라고는 할 수 없는 정도이다. 단, 자연재해라든가 정치적 소요 등이 있을 경우 국방군 정규군 및 동원예비군의 지휘권을 중앙정부로부터 한시적으로 이양받아 행사할 수는 있으며, 다만 이는 재해구제 및 치안유지에 한정하기 때문에 전투 및 병기 사용 명령은 아주 제한된 경우에만 하달 가능하다.[5]

대신, 다른 부분에서 각 주 정부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독립적 권한을 가지고 있다. 특히 징세 관련 권한은 중앙정부에 징세권이 사실상 없다시피 한 상태에서 주 정부가 중앙정부에서 요구한 예산을 의회 승인 하에 지출하는 식이라, 중앙정부도 주 정부와 주 의회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통일된 국가라는 명목 때문에 각 정부는 자발적으로 중앙정부가 제시하는 각종 가이드라인을 최대한 준수하며, 중앙정부가 요구하는 재정분담금도 대부분 이의 없이 납부하고 있다. 주 정부의 행정수반은 지사로, 지사는 주민 직접선거를 통해 선출되며 임기는 5년이며 중임 및 연임이 가능하다. 각 주 지사는 국가 차원의 국방과 외교정책에 대해서 국가안전보장회의 의원의 자격으로 자문할 권한과 의무가 있으나, 실질적으로 어떤 권한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며 중앙정부의 정책 입안에도 직접 개입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대신 앞에서 언급한 대로 국방 및 외교를 제외한 다른 분야에서는 중앙정부로부터 거의 침해받지 않는 제왕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다.

주 의회는 각 주정부에 대해 입법부로서의 권한을 행사하며 각 지방예산 및 중앙정부로부터 주에 할당된 중앙정부 예산안의 심의 및 의결권, 징세를 위한 법률의 제정과 개정, 지방채권의 발행에 대한 동의권, 그리고 주 정부에 대한 감시·비판권을 가지고 있다. 국가의회와 마찬가지로 소선거구제 하에서 직접선거로 의원을 선출하며, 임기는 4년이다. 주 의회 의원의 권리는 기본적으로는 국가의회 의원과 동일하나, 불체포특권만은 국가안보와 관련된 사안에 한해서 공안경찰에 의해 무시될 수도 있다. 단, 이 경우 지사 및 의회 의장의 동의 또는 각 주 법원이 인정한 확실한 증거에 따른 인신구속영장이 있어야만 가능하며, 의회의 개회에 방해가 될 정도의 집단 체포는 불가능하다.

미테란트 공화국의 정당[]

미테란트 공화국의 정치체제는 기본적으로 자유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헌법으로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가 보장되며, 이에 따라 정당의 결성은 기본적으로 자유이다.[6] 단 정당 창립과 이념 주장은 전혀 별개의 문제이며, 실제로 이런 이념들을 내세우는 사람도 별로 없다.

을 표방하는 정당에 대해서는 중앙정부의 강제권으로 해산을 명령할 수 있다. 이에 현재 미테란트 공화국에는 총 4개의 정당이 존재하며, 이들 중 보수계 정당인 자유민주당(Freie Demokratische Partei. FDP)와 중도진보계 정당인 사회민주당(Sozialdemokratische Partei, SDP)이 양대정당으로 버티고 있으며, 여기에 소수정당으로 미테란트 공산당(Kommunistische Partei Mittelands, KPM)[7]과 자유 투표자당(Freie Wähler, FW)이 있다.

이들은 현재 국가원수직이 종신직으로 유지되고 있는 관계로 국가 전체로 봐서는 여당도 야당도 없는 어중간한 상태지만, 자유선거로 선출하는 국가의회, 각 주 의회, 그리고 주지사는 대부분 저 4대 정당 중 하나의 당원이다. 이와 같은 전국정당의 존재가 미테란트 공화국이 하나의 국가라는 인식을 강화하는 경향도 있다.

2064년 현재 국가의회의 원내 제1당은 자유민주당(149석)이며, 미테란트 공산당이 제3당(32석)이고 자유 투표자당은 국가의회에 의석이 없다. 그러나 각 주 의회에서는 사회민주당이 전반적으로 강세이며, 대신 공산당보다 자유 투표자당의 의석점유율이 3배 이상 높아서 몇몇 주에서는 원내 제2당의 자리를 차지하기도 했다. 이는 자유 투표자당이 기본적으로 각 지방의 자치를 중시하는 정당으로, 국익보다는 당리당략에 근거하여 지방정부의 정책을 과도하게 중앙 지향적으로 맞추는 데 저항하는 것을 기본 당론으로 하는 정당이기 때문이다.

현 국가원수인 크리스틴 하렐은 독립전쟁 당시 지하정당이었던 사회민주당 청년당원이었다. 그러나 국가원수가 되면서 사회민주당에서 탈당한 후 현재까지 어느 정당에도 입당하지 않고 있고,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퇴임 후에도 정당에 입당할 의사는 없다고 알려져 있다.


참정권과 선거[]

미테란트 공화국 국민의 참정권은 16세 이상의 모든 국민에게 있다. 이중 선거권은 16세 생일이 지난 모든 국민에게, 피선거권은 16세 이상으로 군 및 모든 종류의 공직에서 퇴역한 사람 또는 병역이 면제된 사람 모두에 주어진다. 즉, 현역 군인과 임용직 공무원에게는 피선거권이 없다.[8] 공무담임권 역시 퇴역 후에 가능하다.

기본적으로 선거는 국가의회 의원 선거(국가총선), 주지사 선거, 주 의회 의원 선거(지방총선)의 3개가 순차적으로 치러진다. 또한 미테란트 공화국 전체에 걸친 국민투표제도는 정치적 악용 가능성 때문에 기본법에서 국가법령으로는 채택하지 않는다고 명문화하고 있다. 그러나 헌법상 주 단위에서의 주민투표제 채택 여부는 각 주의 재량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9개 주 중 4개 주에는 기본법에 영향을 주지 않는 범주의 사안에만 실시할 수 있다는 제한 하에 주민투표제가 존재한다.



  1. 미테란트 공화국의 국무회의는 한국의 국무회의와 마찬가지로 자문기관으로서의 성격을 함께 가지고 있는 의결기관이다.
  2. 육군 총사령관을 겸임한다.
  3. 국가안전보장회의는 단순 자문기관으로서 국가정책에 직접 개입할 권한은 없고, 다만 국가원수가 국무회의에 국방 및 안보 문제 안건을 제출하는 데 필요한 자문을 제시하기 위한 자문기관이다.
  4. 단, 관세 및 일부 세금을 중앙정부에서 징수하여 중앙의 경비를 직접 조달할 수 있다. 물론 그 액수는 그리 많지 않아서, 실질적으로는 정부 유지를 위한 기본비용을 조달하는 정도에 그친다.
  5. 예를 들어서 괴수 출몰(…)이라든가. 우스운 얘기 같지만, 몇몇 위험한 대형 마법생명체의 존재 때문에 기본법 상으로 해당 권한이 주지사에게 주어져 있다. 물론 아직까지 발동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6. 다만 헌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몇몇 이념 국수주의적 민족주의, 인종차별주의, 지역분리주의를 내세우는 정당은 설립할 수 없다.
  7. 국제공산주의 이념에 근거, 미테란트 공산당의 공식 명칭은 국제공산당 미테란트 지구당이었다. 그러나 최근 국제공산당에서 탈퇴하여 미테란트 공산당으로 정식 개명했다. 폭력혁명을 통한 체제 전복은 독립 직후 포기했으며, 다만 국제공산주의 정당으로서 전 세계 국가의 공산당이 계급해방을 위해 연대해야 한다는 기본 이념만은 국제공산당 탈퇴 이후에도 고수하고 있다.
  8. 임용직 공무원들에게는 각종 선거 출마를 위해 공직에서 사퇴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군인은 적어도 의무복무기간에 한해서는 이의 자유가 인정되지 않는다. 또한 직업군인은 장교 이상에 한해 퇴역 당시 계급에 따라 일정 기간 동안 피선거권이 제한되기도 한다. 따라서 현역 군인이 정치가가 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경제[]

개요[]

미테란트 공화국은 대륙에서 제일 산업화가 잘 된 나라이자, 1~3차 산업 모두가 균형을 갖추며 발전한 결과 사실상 모든 분야에서 유례없는 자급자족능력을 갖춘 나라이다. 단순한 자급자족능력만 가진 것이 아니라 그 절대적 규모 역시 거대해서, 대륙과 연합왕국 전체를 포함해도 대륙 2위의 경제대국이며, 연합왕국을 제외하거나 에린 섬만으로 제한할 경우 대륙국가로서는 최대의 경제력을 자랑하고 있다.

1차 산업[]

미테란트 공화국의 1차 산업, 즉 농업과 임업, 축산·낙농업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10% 수준에 불과하며 전체 노동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은 더 낮아서 단 3~4% 남짓이다.[1] 그러나 이와 같이 작은 비중에도 불구하고 1차 산업의 생산량 자체는 막대해서, 한국이나 일본에서 계산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계산한 식량자급률[2]은 무려 120%에 달한다. 물론 실제로는 1차 산업 생산물의 상당량이 수출되고 해외로부터 수입하는 식량도 적지 않으므로 완전한 자급자족을 이루고 있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필요할 경우 자급자족은 충분히 가능한 수준이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설탕의 자급자족이 가능하다는 것인데, 이는 사탕무의 재배 덕분에 가능하다. 미테란트 공화국은 중부주와 북부주 남부가 사탕무 재배에 상대적으로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는데, 이 때문에 대륙 전체 사탕무 생산량의 거의 40% 가까운 분량이 미테란트 중북부 일대에서 생산되고 있을 정도다. 이렇게 생산된 설탕의 절반 이상은 외국에 수출되고 있다.

사실 미테란트 공화국의 높은 식량자급률에는 설탕 열량이 크게 작용하고 있어서, 실제 식량생산량, 특히 곡물 생산량은 국내 실제 수요의 80%를 하회하고 있다. 이에 미테란트 공화국은 라스니아 공화국이나 연합왕국 결속국가들로부터 식량, 특히 곡물을 해외 무역으로 상당량 수입하고 있다. 그 외의 식량은 대부분 90% 이상 자급자족이 가능한 상태에서, 일부 품목은 상대적으로 고품질의 자국 생산품을 수출하고 외국으로부터 대체품목을 수입하는 식으로 조달하는 경향이 보이는데, 이는 식민지 시절의 농업수탈구조를 완전히 탈피하지 못하고 있는 데에서 기인한다.

특히 식민지 시절 농업수탈구조가 살아남은 것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사탕무 농업이다. 본래 미테란트에서의 사탕무 농업은 국가정책 차원에서 지배국가, 특히 에쉬르 제국에 의해 강요되어 일찍부터 기업화되었기 때문이다.

2차 산업[]

미테란트 공화국의 2차 산업은 국가 경제의 약 40% 정도를 차지하고 있으며, 전체 노동인구의 20~25%가 2차 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일단 미테란트 북서부주와 중부주, 남부주에 산재한 막대한 자원 매장 및 생산량은 대륙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특히 대륙의 석유, 역청탄, 철, 기타 희소금속의 매장량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이며, 현재까지는 해외로부터 원자재를 수입할 필요성이 거의 없고 일부 원자재는 과잉생산 때문에 적극적으로 수출 시장을 개척해야 할 정도. 다만 매장량이 없거나 경제성이 부족한 탓에 자체 채굴하지 않고 수입에 의존하는 원자재도 꽤 있다. 특히 라듐은 거의 전량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이와 같은 막대한 천연자원 매장량에 기인한 중공업의 발달이 두드러지며, 이는 식민지 시절에 육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독립 이전에는 주변국들의 공장 노릇을 도맡아 하다시피 했으며, 그 결과 미테란트 공화국의 독립으로 인해 주변국, 특히 라스니아 공화국은 그 산업생산능력이 크게 위축되었을 정도다. 그러나 미테란트 공화국의 2차 산업은 위와 같이 중공업에 특히 유리한 여건임에도 불구하고 경공업 역시 크게 발전해 있다.

미테란트 공화국의 공업은 중공업과 경공업을 막론하고 총 생산능력이 국내 소요를 가뿐하게 초과하는 정도를 벗어나서 우호국인 서부공화국연방만이 아니라 적대적 중립국인 연합왕국, 심지어 실질적인 적성국인 라스니아 공화국조차 공업제품 소요의 많은 부분을 미테란트 공화국에 의존하고 있을 정도다. 특히 연합왕국과 라스니아 공화국은 중공업 제품, 서부공화국연방은 경공업 제품에의 의존도가 높은 편 이는 서부공화국연방의 모태국가인 에쉬르 제국이 해군력 건설을 목표로 하는 대규모 중공업 정책을 추구한 결과 국내 산업기반이 심각한 수준으로 왜곡, 변형된 후유증이다. 이다. 따라서 이를 위한 대외무역이 매우 활발하며, 미테란트의 국내 경제의 2차 산업 중 상당부분이 바로 이 무역 덕분에 유지되고 있다.

또한 미테란트 공화국의 공업은 지하자원의 분포에 따라 우리 세계의 콤비나트에 해당하는 중공업단지인 콘체른(Konzern)을 이루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특징이다. 특히 서부주의 인접한 대규모 철광과 라베 강을 통한 내륙수운을 근거로 한 종합기계공업단지인 베스트그라츠 콘체른[3]이 유명하다.

3차 산업[]

미테란트 공화국의 3차 산업은 국가 경제의 약 50% 가량을 차지하고 있으며, 전체 노동인구의 60% 가량이 종사하고 있다.

미테란트 공화국의 3차 산업의 특색으로는 교통 분야가 차지하는 비중이 타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라는 점이다. 이는 미테란트 공화국이 9개 주로 분할되어 주변 4개국에게 통치를 받았던 역사와 관련이 깊다. 미테란트 공화국의 교통망 중 철도는 연결이 잘 되지 않은 경우가 많고, 이에 따라 독립 후에 집중적으로 건설된 도로를 활용한 차량운송이 철도보다 더욱 활발한 편이다. 이것과 관련한 산업 비중이 3차 산업 내에서 매우 높은 것이다.

또한 서비스 산업은 주로 산업화 과정에서 급증한 2차 산업 노동자들의 생활 편의를 위해 구축되었기 때문에 지역편중이 심하다. 또한 사회문화적 특성에 따라 업종이 매우 다양하게 분화, 발전되어 있기도 하다. 이 때문에 3차 산업 중 서비스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인구만도 전체 노동인구의 거의 50%에 달할 정도로 많다.

단, 이 서비스 산업 종사자 중에서 우리 세계의 아르바이트에 해당하는 미성년자 및 노인, 즉 노동인구 통계에 잡히지 않는 연령층이 차지하는 비중이 만만찮게 높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즉, 서비스 산업이 차지하는 노동인구 비율은 실제로는 더 낮은 숫자이다.


미테란트 공화국의 화폐제도[]

미테란트 공화국을 포함한 현재 이 세계의 화폐제도는 세계 공통으로 금본위제를 채택하고 있다.

구세계에서 금본위제를 처음으로 채택한 국가는 연합왕국이며, 대륙력 18세기 후반부터 미테란트 공화국 독립전쟁 발발 이전까지 자유 주조, 자유 처분을 허용하는 금화본위제를 채택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금본위제는 해외 식민지 지배를 통해 적지 않은 금이 유입된 대륙에서 각국의 표준으로 정착하게 되었다.

그러나 대륙의 공업 및 자원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은 미테란트에 대량의 금이 집중되고, 미테란트 자체도 상당한 금 생산량을자랑(독립전쟁 발발 직전 기준 연산 100톤)하여, 대륙력 21세기 초반이 되면 대륙 국가들의 금 보유량 중 절반을 넘는 약 2만 톤이 미테란트에 집중되는 현상을 보였다.

이는 동 세기 중반이 되어서 거의 50% 가까이 더 증가했고, 이에 에쉬르 제국과 라스니아 공화국의 금 유출은 감당 불가능한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두 나라 모두 미테란트 식민지에 묶여 있는 금화가 자국 국내에 있는 금화의 절반을 넘는 바람에 심각한 불황의 원인이 되었고, 반대로 미테란트에서는 물가가 과도하게 상승하는 현상이 발생했으며, 그 과정에서 부산물로 발생한 소농 몰락 때문에 안 그래도 적던 농업 종사 인구가 한층 급감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이런 금의 과도한 집중 때문에 연합왕국을 제외한 주변 지배국 3국은 금화본위제를 금지금본위제로 변경하고 자국령의 모든 금을 중앙은행에서 장악하려 하였다. 이에 대해 금화본위제를 기반으로 하는 국제자유무역을 기본 경제정책기조로 삼고 있던 연합왕국과 미테란트 식민자본가들이 이에 맞서는 양상을 보였다.[4] 이후 독립전쟁이 발발했고, 그 결과 라스니아 왕국과 미테란트 임시정부가 금의 거래정지를 선언하면서 연합왕국 역시 금의 거래를 정지해야 했다.

이때의 금시장 와해로 인해 독립전쟁 종전 이후에는 연합왕국조차도 금화본위제에서 금환본위제로 이행하지 않을 수 없는 정치적 상황을 맞이했다. 이에 결국 구세계의 양대 금보유국인 연합왕국과 미테란트 공화국이 상호 합의 하에 금지금본위제로 전환했고, 타국도 이에 따르는 형식을 거쳐 현재 전 세계의 기본적인 화폐가치는 금지금본위제를 근간으로 해서 유지되고 있다. 또한 아틀리아 자유국과 같이 자체적인 금 보유량이 적은 국가들은 금환본위제를 채택하고 있다.

현재 미테란트 국립은행의 금 보유량은 약 26,300톤이며, 이는 전 세계에서 유통되고 있는 본위화폐로서의 금 중 23%를 차지하고 있다. 참고로 현재까지의 세계 금 생산 총량은 16만 톤으로, 이중 약 11만 톤이 본위화폐로서 사용되고 있다.

현재 미테란트 공화국의 유통화폐는 금화인 본위화폐와 지폐, 동전으로 나뉜다. 이중 가장 널리 쓰이는 통화인 지폐는 태환화폐로서의 은행권인 라이히스굴텐(Reichsgulden)으로, 통상 1라이히스굴텐은 2064년 현재 금 0.88g 상당이다. [5] 은행권의 발행은 국립은행(Reichsbank)에서만 할 수 있으며, 발행되는 은행권은 1, 5, 10, 50, 100라이히스굴텐의 5종이며, 고액거래에서는 보통 금괴[6] 또는 수표가 쓰이고 있다. 법정 본위화폐로서의 금화도 지폐와 같은 구성으로 존재하고 통용 역시 이론상으로는 가능하나, 실질적으로는 거의 유통되지 않는 명목화폐이다.

지폐의 보조 화폐로서 페니히 주화가 발행되며, 1페니히는 1/1000굴텐이다. 발행되는 주화는 500, 100, 50, 10, 1페니히의 5종이 있으며, 모든 주화는 동화 또는 백동화이고 은화는 쓰이지 않고 있다. 금의 과도한 유입으로 인한 물가상승이 원인이 되어 은화의 폐화가 이루어졌고, 미테란트 공화국 독립 이후에는 화폐의 실질가치가 중요하지 않게 되어 동화가 은화의 자리를 대체할 수 있었다.


  1. 이는 미테란트 공화국의 농·축산·임업이 철저하게 기계화되어 있다는 데에서 기인한다. 미테란트의 농업은 산업화로 인한 농업노동력 부족으로 오래 전부터 축력 및 기계를 이용하는 것이 당연시되었고, 또한 상업성 높은 몇몇 작물은 일찍부터 기업화되어 계획적으로 경작되기도 했다.
  2. 한국·일본 등에서 발표하는 식량자급률은 국내에서 생산되는 식량자원의 칼로리를 산출한 후 국민이 매년 소모하는 칼로리와 비교해서 산출하는 것이기 때문에 실제 국내 식량공급의 안정성을 보여주는 척도는 되지 못할 수 있다.
  3. 작중에 등장한 코블렌츠 중공업의 토바이 공장이 바로 이 베스트그라츠 콘체른에 속해 있다. 베스트그라츠 콘체른은 미테란트 공화국의 콘체른들 중에서도 특히 코블렌츠 중공업을 중심으로 하는 방위산업단지로서의 성격이 강하며, 미테란트 공화국 방위산업 생산량의 거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다.
  4. 사실 이것이야말로 미테란트 독립전쟁 발발의 진정한 배경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당연히 식민자본가들의 금 확보는 미테란트의 독립성 확보를 위한 노력의 산물이었는데, 금지금본위제로의 전환은 자칫하면 비대해져가는 미테란트 경제의 지배국에 대한 전면 종속을 부를 가능성이 높았다.
  5. 이는 브레턴우즈 체제 초기의 달러:금 태환율과 같다. 즉 금 1트로이온스(31g)=35달러=35라이히스굴텐이 되는 셈이며, 1930~40년대의 미국 경제력과 미테란트 공화국의 경제력 및 물가 상황은 세부 수치가 제시되면 바로 대입해서 추산 가능하다. 물론 실제 의미가 있는 추산은 아니지만, 간략한 비교는 가능한 정도이다.
  6. 120,000라이히스마르크(금괴 100kg) 이상 거래부터 금괴 사용이 허가된다. 이와 같은 액수 제한은 세계 공통이며, 100kg은 국제적인 거래 기준으로도 작용한다. 단 귀금속으로서의 금 유통은 위와는 다른 조건으로 이루어진다.

교육[]

개요[]

미테란트 공화국의 교육제도는 기본적으로 중앙정부 문화교육성이 설정한 국가교육정책안에 근거해서 각 주 문화교육부가 세부 시행안을 수립, 각 지방정부에 권고하고 지방정부는 권고안을 기준으로 각 주의 현실에 맞추어 교육행정을 실시한다. 특히 의무교육은 중앙정부의 권고안이 거의 수정 없이 적용되는 수준이다.

그에 비해 고등교육은 각 주의 여건 및 각 주가 가지고 있는 고등교육기관의 역사에 따라서 어느 정도 차이가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 역시도 지역 편차를 최소화하기 위해 중앙정부 문화교육성에서 어느 정도의 통일안을 만들어 각 주에 권고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전반적으로 고등교육 역시 전반적으로는 유사한 구조로 실시된다. 또한 고등교육 이수를 위한 학력인증은 중앙정부 문화교육성이 직접 이행하는 대학입학자격시험를 통해 이루어진다.

의무교육[]

미테란트 공화국의 의무교육제도는 아래 표와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다.

과정 구분 명칭 교육기간 입학연령
초등교육 프리마슐레(Primaschule) 6년제 6세
중등교육 레알슐레(Realschule, 이과학·실과)
또는 김나지움(Gymnasium, 인문학)
4년제 12세


여기에 4~5세 연령대 아동은 유치원(Kindergarten)에 들어갈 수 있으나 의무사항은 아니며, 단 유치원은 각 주 정부 재원으로 운영되어 무상교육을 받을 수 있어서 거의 모든 아동이 유치원에 들어간다. 무상교육은 의무교육기간 전 기간에 걸쳐 행해진다.

단, 중등학교는 의무교육임에도 반드시 전 과정을 의무교육연령 기간 내에 마칠 필요는 없다. 군 입대를 원하는 14세 이상의 청소년은 군 입대를 사유로 해서 중등학교를 휴학한 후 군에 입대할 수 있으며, 이 경우 군에서 통신교육을 통해 나머지 학업을 마칠 수 있도록 군 당국에서 보장한다. 이렇게 군에서 통신교육으로 중등교육을 마치는 경우, 입대 전에 다니던 학교로부터 수료증을 받게 된다.

대학입학자격시험[]

의무교육인 중등교육 과정을 모두 마친 뒤에는 레알슐레건 김나지움이건 대학입학자격시험인 아비투어(Abitur)에 응시할 자격을 얻으며, 이 시험에 합격하면 미테란트 공화국에 있는 그 어떤 대학이라도 입학할 수 있는 자격을 받는다. 미테란트의 대학입학자격시험은 세계적으로도 어렵기로 악명이 높은 시험이며, 단순히 학력만을 보는 게 아니라 해당 수험생이 진심으로 대학을 다니려 하는가를 인증하는 고차원적인 면접시험까지 부가되기 때문에 합격률은 상당히 낮으며, 레알슐레보다는 김나지움 출신이 상대적으로 합격률이 높은 편이다. 또한 대학입학자격시험에 합격하면 중등학교 졸업증을, 불합격하거나 아예 지원하지 않으면 중등학교 수료증을 받게 된다.

또한 입학자격시험을 통과하고 나서 5년 동안 대학입학자격이 계속 유지되므로 이 기간 동안에 바로 대학을 가지 않고 군복무를 하거나 취업 후 직장생활을 하다가 대학에 진학하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다. 단 5년이 지난 뒤에는 자격 갱신을 위한 재시험을 치러야 한다. 재시험은 면접이 빠지므로 상대적으로 합격이 쉬운 편이나, 단 한 차례만 면접 없는 재시험이 가능하며 그나마도 2년 뒤에는 그 권리마저 사라진다. 그 이후에 대학에 가기를 원한다면 각 대학이 따로 치르는 본고사를 거쳐 입학하는 수밖에 없다.

또한 중등교육을 마치지 못한 채 군에 입대한 이들은 통신교육으로 중등교육을 마치고 나서 대학입학자격시험 응시 자격을 얻게 된다. 단, 대학입학자격시험은 매우 어려운 시험이기 때문에 복무 중에 시험에 합격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보통 병 전역 후 준 현역 복무기간 중에 수험준비를 해서 동원예비역 기간에 합격하거나, 아니면 아예 하사관으로 지원한 후 준사관이 되어 장교 임관을 전제로 하여 군을 휴직하고 대학입학자격시험에 응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물론 휴직 없이 아비투어를 패스하는 경우도 없지는 않지만, 건국 후 30년을 통틀어서 손에 꼽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고등교육[]

고등교육은 각 주의 주립대학과 오랜 역사를 가진 사립대학, 그리고 대학에 준하는 각종 고등교육기관에서 실시되며, 의무교육이 아니라 대학입학자격시험으로 학력이 인증된 제한된 인원에 대해서만 실시된다. 통상적으로 고등교육은 중등교육 이수 인원의 10~15% 정도만이 받게 되지만, 통신과정 및 만학도를 위한 추가 교육과정, 그리고 비교적 자유로운 청강이 가능하다는 미테란트 대학 구조의 특성 때문에 실제로는 조금 더 많은 인원이 고등교육을 받게 된다.

미테란트의 고등교육기관은 대학으로, 어느 대학에서 학사학위를 취득한다면 이것은 단과대학을 졸업한 것이 되고, 이어서 석사학위까지 취득한다면 종합대학을 졸업하는 것이 되는 식으로 운영된다. 즉 대학과 대학원의 구분이 따로 없이 한 학교에 계속 있으면서 교육을 받는 셈이다.

대학 학비는 주정부 및 중앙정부의 보조금 때문에 일단은 의무교육과 마찬가지로 공식적으로는 무상이다. 단, 학교에서 필요로 하는 기본적인 학비 이외에도 각 과목마다 수업료를 따로 지불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어서[1] 현실적으로 완전한 무상교육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또한 미테란트 대학의 강의별 수업료 부과 방식과 각 과목의 학생 모집 및 교육진행방식을 살펴보면 미테란트의 고등교육은 우리 세계, 특히 한국의 대학보다는 대학원의 그것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이는 우리 세계에서도 18세기~20세기 초반까지의 유럽에서는 당연한 모습이었다. 어떤 의미로는 전통적인 중부 유럽 고등교육 시스템이 현대적으로 진화해서 우리 세계보다 더 낮은 연령층[2]을 상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도 무방한 셈이다.


  1. 이는 서구 대학에서 20세기 초반까지 흔히 볼 수 있었던 구조로, 일종의 도제徒弟 제도라고 할 수 있다. 교수는 자신이 재적하고 있는 학교에서 스스로 강의를 개설하고 학생을 모아 그들로부터 수업료를 받으며, 학교로부터는 품위유지 명목의 작은 급료만을 받는다. 굳이 돈을 벌 의사가 없거나 굳이 돈을 벌지 않아도 될 만한 재산을 가지고 있고 연구비가 크게 필요하지 않다면 교수는 굳이 강의를 할 의무가 없이 그저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수업료가 없는 강의를 개설하기도 한다. 이 경우 딱히 등록하지 않아도 청강이 가능하다. 또한 대학 강사는 학교로부터 급료를 받지 않고 단지 수업료만 부과할 수 있다.
  2. 군복무 때문에 3년 이상 대학 진학이 지연되고 있을 뿐, 실제로 군에 입대하지 않을 경우 대학에 진학 가능한 최저 연령은 자그마치 15~16세라는 점을 잊지 말자. 유럽도 19세기 초중반까지는 10대 중반 무렵에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지만, 19세기 후반이 되면 의무교육 구조가 정립되면서 18~19세를 전후해 대학에 입학하는 것이 일반화된다.

군사[]

이 부분의 본문은 미테란트 국방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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