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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kesfreiwilligenarmee(독) Добровольцы армии(러)

강철의 누이들 세계에 존재했던 군사조직. 대륙력 2036년에 발생한 미테란트 독립전쟁에 참전한 구 에쉬르 제국 출신 의용군 부대의 통칭이다. 전쟁 중반기에 비 공산주의 의용군 조직인 국제군단을 흡수, 훗날 창설된 미테란트 국방군과 함께 독립전쟁의 양대 축으로서 활약하였다. 독립종전 직후인 대륙력 2044년부터 순차적으로 서부공화국연방에 귀환, 서부공화국연방의 국군인 인민혁명군으로 재탄생하였다.


창설 Edit

대륙력 2036년의 에쉬르 혁명과 연이은 각국에서 벌어진 공산주의자 및 무정부주의자들의 소요사태가 발단이 되어 미테란트 독립전쟁이 발발하자, 전 세계에 걸쳐 주로 진보진영에서는 미테란트 공화국의 독립을 지지하여 대정부 행동에 나섰다. 이 독립 지지 운동에는 보수진영에서 중도적인 인사들 역시 가담하여, 전반적으로 미테란트 공화국의 독립 지지 여론이 더 강한 편이었다. 그러나 각국 정부는 미테란트 공화국의 독립을 허용하는 것이 단순히 식민지의 상실 문제가 아니라 대륙 전반, 심하면 전 세계에 걸친 정치/경제 세력의 전면 재편성을 의미한다는 점 때문에 독립을 저지하기 위한 일련의 치안유지 및 군사행동에 나섰다. 여기에 막 태동하던 서부공화국연방의 혁명을 방해하기 위한 위한 본격적인 경제제제를 병행하자 당시 미테란트의 건국준비조직이었던 미테란트 임시정부국제공산당이 상호 보조를 맞추어 타 열강국에 맞서는 구도가 형성되었다.

그런데 국제공산당의 본격적인 행동에 앞서 구 에쉬르 제국 각급 군부대에 형성돼 있던 혁명위원회가 주축이 되어 혁명의 동지, 탄압받는 민중의 구원에 나서야 한다며 의용군의 결성에 나섰고, 제일 먼저 미테란트 주둔 에쉬르 제국군 군부대가 자발적으로 전투 편성을 갖추었다. 이에는 구 제국군 미테란트 주둔부대원 상당수가 미테란트에서 나고 자란 이들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미테란트에 장기 주둔하면서[1] 현지처 및 자녀들의 존재 때문에 미테란트에 애착을 갖게 된 자들이 많았다. 특히 영외 거주가 허용되던 고참 하사관 상당수는 자국의 치안유지기관들이 미테란트인들에게 자행하던 폭력과 난행을 라스니아 및 연합왕국의 침공부대가 자기 아내와 애인들 및 자녀들에게 자행하리라는 공포에 사로잡혀, 그때까지 혁명에 유보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던 이들조차 앞을 다투어 혁명위원회에 가입하는 웃지 못할 사태가 빚어지기도 했다.

당시 자발적으로 나선 구 에쉬르 제국군은 대부분 연대장 및 대대장, 심하면 중대장까지도 공석 상태인 경우가 많았고, 이 때문에 병사들 중 경험이 많고 능력이 있다고 여겨지는 이들을 대상으로 투표를 거쳐 지휘관을 선출하였다. 이런 식으로 거의 모든 연대 지휘부가 일부 예외를 제외하면 병사 또는 하사관 출신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지휘능력은 형편없었다. 그래도 일부 영관 및 위관장교가 혁명에 가담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을 주축으로 해서 이미 와해 상태인 미테란트 주둔군 사령부 대신 군을 일괄 통제할 임시 사령부가 만들어졌고, 사령관으로는 역시 투표를 거쳐 구 에쉬르 귀족 출신 장교 레바즈 이바노비치 바그라치온(Реваз Иванович Багратион, Revaz Ivanovich Bagration) 포병 대령이 선출되었다. 바그라치온 대령은 병사들의 추대를 받아 의용군 사령관이 된 후, 임시 선출된 장교 및 하사관단의 투표를 거쳐 만장일치로 소장(Генерал-майор) 계급을 받았으나, 이 계급은 정규 계급이 아니라 임시 계급(Временное повышение, Brevet)이었다.

창설 당시 전력은 현 미테란트 중부 및 서부, 북서부의 3개 주에 걸쳐 분산 배치돼 있던 총 60개 연대 약 12만 명과 각급 보조부대를 합쳐 30만 명이었으나, 각 연대는 지휘관 및 중간간부 대다수가 혁명의 와중에서 피살되거나 모욕을 당하고 강제 퇴출되어 귀향한 상태였고, 이후 이어진 혁명위원회들의 난맥상으로 많은 병사들이 탈영하거나 허가를 받고 귀향한 상태여서 실 병력은 전투병력 8만 명, 후방지원병력 9만 명이었다. 의용군 임시 사령관 바그라치온 임시 소장은 주적 중 하나로 예상되던 연합왕국군 편제를 참고하여, 전력이 2/3 이하까지 감소한 연대 다수를 하나로 묶어 임시 여단을 만들었다. 이 조치는 각 연대에서 추대된 연대장들이 연대장으로서의 기량이 매우 낮고, 잘 해야 대대장 이상의 능력을 발휘하기 어렵다는 점 역시 감안한 것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연대를 여단으로 묶는 기본적인 조치가 절반도 채 진행되지 않은 시점에서 라스니아 육군과 연합왕국 육군이 본격적으로 미테란트 서부를 향해 진군하기 시작했기에, 결국 개전 초기 인민의용군은 형편없이 약화된 채 분산된 연대 다수와 지도력이 의심되는 여단장의 통제를 받는 강화된 연대 규모의 여단들로 전쟁에 돌입해야 했다.

독립전쟁에서의 활동과 본국과의 관계 Edit

종전 이후-해산과 재탄생 Edit

뒷이야기 Edit


  1. 구 에쉬르 제국군은 징병제를 채택하였으나, 광범위한 군 면제 제도의 존재 때문에 인구에 비해 확보 가능한 병력이 적었고, 이에 비해 필요한 군대는 많았다. 이 때문에 통상 징병되면 10년에서 15년 이상의 복무 기간을 군에 매여 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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