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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ional Sozialistische Deutsche Arbeiter Partei, NSDAP(독)


개요 Edit

우리말로는 "민족사회주의 독일 노동자 정당". 세계에서 실제 집권했던 정당 중 유일무이한 "인종차별주의를 당 강령으로 삼은 파시즘 정당"이다. 인종차별을 당 강령으로 삼은 정당은 비교적 많지만, 이런 정당 중 파시즘 정당으로서 실제 국가, 그것도 서유럽 국가를 선거를 통해 장악한 정당은 이들이 유일하다. 다른 나라의 파시즘 정당은 인종차별을 근간으로 하지 않거나(이탈리아 파시스트), 아니면 독일군의 점령을 배경으로 해서 독일의 괴뢰정권으로서 집권한 경우(노르웨이 등) 혹은 무력으로 정권을 탈취한 경우밖에 없다. 즉, 범국민적인 사상적 동조, 적어도 묵인 하에 집권한 유일무이한 인종주의 파시스트들이 나치당이다. 1919년 겨우 20여 명의 노동자들이 모여 창당, 1920년대에 급격히 당세를 확장하여 1933년에 연립내각의 수권정당으로서 집권하고, 1934년에 이르러 당내 계파 정리를 마치고 아돌프 히틀러를 수장으로 하는 완전한 일당독재체제를 확립하여 1945년까지의 12년에 걸쳐 독일을 지배했다. 또한 그들의 삐뚤어진 이념은 결국 1939년부터 1945년까지 계속된 제2차 세계대전의 유럽 전선이 시작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으며, 그 이념으로 인해 독일은 결국 전쟁에서 패배하였다.

나치 집권기간 동안 발생한 비인도적 범죄 Edit

  • 집권기간 동안 인종주의에 기반한 반유대주의 및 게르만 민족 우월론을 기반으로 하여 1935년의 뉘른베르크 인종법을 시작으로 1938년 수정의 밤 사건, 이어서 1939년 제2차 세계대전 개전과 동시에 유대인 및 슬라브계 폴란드인에 대한 조직적 학살 및 현지인들의 반유대 폭동을 유도하는 등의 악행을 저질렀다. 이어 1941년에 이르러서는 줄여서 최종해법(Die Endlösung, Final Solution)이라고 통하는 "유대인 문제에 대한 최종 해결책(Die Endlösung der Judenfrage)"의 실행을 결의,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수용소로 잘 알려져 있는 크고작은 유대인 절멸수용소를 운영, 매우 보수적인 집계로는 450만 이상, 학계의 일반적인 견해로 600만 가량, 최대 700만 이상, 심지어 나치 옹호자들의 추정치로도 수십만 단위로 추정되는 서유럽 및 동유럽 거주 유대인을 총살, 독살, 가스실 처형, 미필적 고의에 의한 병사 및 아사 유도 등의 방식으로 학살하였다. 이는 단일 인종에 대한 조직적인 박해로 인해 가장 단기간에 가장 많은 수효가 사망한 사례이며, 인구비례로 계산해도 이보다 높은 비율로 단기간에 인종청소가 실행된 사례는 아직까지 발생하지 않았다.
  • 이와 같은 인종주의적 범죄는 유대인 한정으로만 자행하지 않아서, 집시 역시 수십만 명이 희생당했다. 또한 폴란드를 포함한 동부 유럽 및 유럽 러시아의 민간인, 나치의 주장에 의하면 독일 민족의 생활권역(Lebensraum)에 정주하던 슬라브계 인종 전반 역시 박해 대상이 되어, 5년간 계속된 독일과 소련의 전쟁 기간 동안에는 이의 실천을 위해 무고한 민간인들을 파르티잔으로 몰아 학살 혹은 강제연행, 집단수용소 수용 등의 악행을 자행했다. 그 결과 폴란드인 500만 명을 비롯하여 소련 인민 1천만 명(폴란드와 소련인의 희생자 규모에는 유대인 희생자 600만 명이 포함되어 있음)이 나치 이념에 기반한 독일의 군사/비군사행동으로 살해당했다.
  • 인종주의에 기반한 잔혹한 정책의 집행 대상은 심지어 자국 국민조차 예외가 아니어서, 육체적/정신적 장애가 있는 모든 독일인 역시 절멸 대상으로 간주[1]하여 T-4 프로젝트로 불리는 국가 주도의 안락사 정책이 실행되었는데, 이 희생자만 해도 30만 명을 넘는다. 이는 나치를 지지하던 독일 국민들마저도 분노[2]케 하여, 결국 전쟁이 본격화되던 1941년을 전후해서 공식적으로는 정책이 폐지되었으나, 실제로는 종전 직전까지도 비밀리에 계속해서 집행되었다.
  • 또한 일당독재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반체제 인사들을 대규모로 체포, 강제수용소에 수감하거나 사법살인을 저질러 살해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는 당시 독일의 사법정신에서 크게 어긋나는 예비검속 개념이 적용되어, 말 그대로 법에 근거하지 않은 대량 체포/대량 수감/기간이 정해지지 않은 구금 및 강제노동이라는 일이 1933년부터 1945년까지 끊이지 않고 계속되었다. 이 과정에서 희생된 독일인은 전쟁 전에도 이미 수만 명에 달했다.[3] 이 과정에서 세속국가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특정 종교집단(여호와의 증인) 및 국제평화주의를 기조로 하는 양심적 병역 거부자, 공산주의자 및 온건 사회주의자,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일반인 전반이 큰 희생을 치렀다. 이 강압적인 체제는 나치를 지지하든 지지하지 않든 거의 모든 독일인들에게 직접적인 위협으로 작용, 나치의 강압적인 정책으로 독일이 패전에 이르기까지 적극적인 반체제 저항이 발생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
  • 또한 이와 같은 악행에는 개인의 성적 취향이나 직업 같은 사소한 문제까지 포함되어, 동성애자 및 양성애자, 매춘부[4]들 역시 사회의 전통적 가치를 파괴한다는 명목으로 사회불안세력으로 간주하여 강제수용소에 수용, 강제노동에 종사케 하거나 처형하기도 했다.


현대 역사에서의 평가 Edit

딱 한 줄로 요약 가능하다.

"천하의 개쌍놈들"

이 요약에 동의하지 않고 이를 공공연히 주장하는 자는, 유럽에서는 사법처리 대상이 될 수도 있다. 개인의 사상의 자유를 인정하는 국가에서조차도 유럽, 특히 나치의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국가에서라면 예외가 거의 없다. 그럼에도 인종주의 및 민족주의가 완전히 사라질 수는 없는 것이 유럽의 현실이므로, 이들의 사상 자체는 아직도 극우파 소수정당 및 소규모 시민단체들 사이에 여전히 뿌리깊게 살아 있으며, 이들은 나치에 의한 모든 범죄를 부정하는 각종 활동을 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전반적인 대세는 여전히 "나치는 천하의 개쌍놈들이다"이다.

단, 이들의 악행이야 어쨌든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것은 나치일지 모르나 그 자리에 나치가 없었다 해도 제2차 세계대전은 발생했을 것이라는 견해는 사학계에서는 종종 제기되는 의견이다. 이런 의견의 기반으로는 독일인 전반을 예비 나치, 적어도 나치에 대한 제한적인 동조자로 보는 견해와 독일의 지정학적 입지 및 그들의 국력으로 인한 주변국의 우려가 더 중요한 원인이라는 견해로 나뉘며, 전자의 경우 현대 독일 학계를 중심으로, 독일인 전반이 나치에 동조한 자들이라는 것을 일단 거의 사실로 인정하는 상태에서 히틀러와 같은 광기어린 독재자의 집권이 없이 독일 국가 전체가 그런 망동에 말려들 것인가 아닌가에 대한 의견만 갈라지는 단계이다. 도리어 후자는 1960년대에 연합국 측에서 먼저 제기된 것을 독일인 스스로가 수정주의 논쟁을 통해 논파해 버렸다. (...)

강철의 누이들의 나치 옹호 의혹 Edit

  • 이 항목은 본래 나치 항목에 들어갈 이유가 별로 없는 부분이나, 각 항목별로 분산시켜 넣기보다는 이곳에 하나로 모아 놓는 편이 그나마 낫다는 인식에 이렇게 처리함

근본적으로 강철의 누이들에 등장하는 국가인 미테란트 공화국은 바로 이들 나치가 집권했던 시기의 독일과 유사하다고 느낄 수 있는 국제적 여건 하에 놓여 있다. 특히 나치에 대한 최소한의 옹호, 즉 앞서 언급한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 원인에는 독일 자체의 과오나 나치의 악행보다도 주변국이 독일의 국력과 거침없는 행보에 느낀 공포가 더욱 크게 작용했다는 견해에 어느 정도라도 동조하는 경우에는 여지없이 미테란트 공화국과 당시 독일을 겹쳐 보기 쉽다.

여기에 작중 등장하는 장비 역시 전차의 경우 해당 시기 독일군이 사용한 전차들과 거의 일치하거나 적어도 형상은 거의 닮은 것으로 설정돼 있으며, 전차병들의 피복 역시 사실상 동일하다. 기타 병과에서는 독일식의 장비나 피복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 것에 비해 작중 주된 등장인물 전원이 속한 기갑병과 및 기타 전투원들 대부분이 나치 집권기 독일군의 해당 병과를 연상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피복 및 장비를 운용한다는 점에서, 나치에 대해 조금이라도 심정적 옹호가 가능한 사람들이라면 이내 나치와 이들을 동일시 - 적대적이지 않은 의미에서 - 할 수 있다.

또한 반대로, 나치에 대한 극단적 혐오감 또는 건전한 수준의 반나치 의식과 이에 필요한 최소한의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역시 바로 위에 언급된 내용들에서 바로 나치를 떠올리고 소설 전반에 대한 가벼운, 혹은 중대한 반감을 가질 수 있다.

강조하지만, 이런 견해는 잘못된 것이 아니다. 도리어 이런 견해를 가지는 것이 더욱 건전한 역사관을 갖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5] 이에 대해 글쓴이인 윤민혁 본인도 이런 견해를 가진 이들의 주장에 대해 딱히 자신의 작품에 대한 적극적인 옹호를 시도할 의사는 없고, 단지 일부 사실관계의 정정만 하고 있다.[6] 또한 그와 동시에, "나치 옹호"까진 아니더라도 친독 정서 및 독일군 기갑부대에 대한 호감이 강한 특정 계층을 노린 캐릭터 및 장비 디자인임은 부정하지 않으며, 이 때문에 발생하는 비판에 대해서는 어떤 반론을 하더라도 소용이 없음 또한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진짜 문제는 위의 것이 아니다.

주인공인 김한얼이 입으로는 반 나치적 입장을 고수하고 있음에도 실질적으로는 친독적 입장, 그것도 바로 그 시기의 독일국방군에 대한 호감을 드러내놓고 표출하고 있다는 것이 진짜 위험성이다. 김한얼의 독일에 대한 인식은 독일의 군사사학자들이 흔히 "깨끗한 독일국방군의 전설"이라고 불리는, 1946년부터 1960년대까지 지속된 독일국방군과 나치 정권의 밀접한 관계 부정과 이를 통한 독일 군사조직의 명예 회복이라는, 현대 독일사의 가장 큰 치부 중 하나인 부분을 근간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독일국방군은 나치 집권 시기부터 일관되게 나치에게 이용당한 도구가 아니라, 적어도 나치 집권 초기부터 2차 세계대전 발발 직후까지는 정치적 동지 관계였음은 독일 사학계에서는 이미 1960년대 후반부터 입증된 사실이다. 김한얼 역시 과도할 정도의 군사사 서적 수집 및 독파를 통해 이것을 알고는 있으나, 어린 시절에 가장 인상적으로 본 책이 독일군의 활약상만을 다룬 책들이기 때문에 심정적으로는 친독으로 크게 기운 상태이다. 따라서 김한얼에 대해 감정이입을 할 수밖에 없는 1인칭 소설의 한계 때문에라도, 독자는 무의식중에 친독적 시각을 갖도록 강요되거나, 아니면 친독적 시선의 존재를 느끼고 불편한 감정을 품을 수밖에 없다.

여기에 글쓴이 윤민혁 또한 김한얼과 같은 궤적을 밟아 왔던 탓에 같은 약점을 가지고 있다. 스스로는 그런 옹호 의식에서 이제는 겨우 벗어났다고 생각은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여기에 객관적 비유를 빙자하여 독일군의 실적을 집중 언급함으로서 그들의 악행을 묻어 넘기려는 행동 역시 무의식적으로 할 때가 아직 종종 있다.[7] 이 두 가지가 합쳐짐으로서, 결국 강철의 누이들은 전반적으로 친독적 시각을 가진 채 진행될 수밖에 없다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이는 시작부터 김한얼의 캐릭터를 조금 더 반독적인 캐릭터로 설정함으로서 충분히 상쇄 가능한 문제[8]였으므로, 결국 윤민혁의 책임이다. 물론 처음부터 의도한 것이긴 하나, 그래도 해결할 수는 있는 문제였다.[9]

그리고 가장 최근의 본편 연재분에 언급된 서부공화국연방미테란트 문화권 절멸정책은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소련이 나치의 악행을 재현하는 양상"인 관계로,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극단적인 나치 옹호의 일환이 될 수 있다는 점 역시 문제이다. 이 문제는 아직 작중에 상세한 내용이 언급된 바 없고 관련 설정 역시 공개되지 않아 딱히 언급하기에는 이르지만, 기획 초기단계부터 후반부의 주요 이벤트로 상정하고 있던 것이므로 어느 정도 장치를 설치하고는 있다. 그러나 그 장치 역시 고작해야 외견상 드러나는 이미지 정도에 그치고, 실제로 있었던 사건을 연상케 하는 측면에서는 모든 것을 소련에게, 스탈린에게 덤터기씌우는 파렴치한 행위로 비치기 십상이라는 사실은 전혀 변함이 없다.



  1. 사회진화론에 기반하여 사회적 약자는 도태되는 것이 자연의 섭리이므로, 이들이 제거되지 않으면 독일민족 역시 열등 민족이 되리라는 주장이었다. 여기에 이들의 생존을 위한 비용 지출이 경제적이지 않다는 논리도 첨부되었다.
  2. 특히 영웅적으로 싸우다가 부상을 입어 장애를 안은 국방군 장병들까지 이 정책의 희생자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일어난 탓이었다.
  3. 이는 단순히 정치적인 목적에서만 진행된 게 아니라, 아예 사회안전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조금이라도 불온한 기색을 보이는 형사 전과자까지 모조리 체포해서 수감한 것도 있으므로 희생자들을 모두 반체제 인사로 간주하는 것은 옳지 않다. 단, 이 경우도 일단은 무고한 시민을 닥치는 대로 체포했다는 사실까지는 변하지 않는다.
  4. 당시 유럽 문화권에서 매춘은 전통적으로 합법은 아니지만 금지되지도 않은, 비불법(非不法)의 영역이었다.
  5. 물론 반나치 의식에 기인한 과도한 반독 정서, 혐독 정서는 역효과 - 즉, 인종주의적 반유대주의의 미러 이미지에 해당하는, 독일인 자체에 대한 인종적 편견 - 를 부를 수 있으므로 중도를 지킬 필요는 있다.
  6. 분명히 나치 독일을 연상케 하는 장치가 아닌 것까지 나치 독일을 연상케 한다는 주장. 예를 들어 미테란트 국방군의 사단 편제는 미군이 모델임에도 그것이 독일군의 그것과 똑같다는 주장이라든가. 이는 독일군의 사단 구조와 사단이 갖는 작전술에서의 위치를 조금이라도 이해하면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물론 이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으므로, 저런 오해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7. 적어도 소설에서는, 불필요하게 분량만 늘릴 수 없다는 이유가 있으므로 그러려니 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일에선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윤민혁은 뚜렷하게 독일을, 적어도 독일국방군은 확실하게 옹호했다. 대표적으로는 윤민혁의 7월 20일 사건에 대한 평가 변화가 그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윤민혁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에는 7월 20일 사건 주모자들을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자기들만 살아남기 위해 반역을 저지른 자들로 인식했고,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까지는 깨끗한 독일국방군을 상징하는 얼마 안 되는 의인들로 인식했다. 참고로 현재의 시각은 어차피 그게 그거인 놈들이다. 민중 차원의 반나치 투쟁에 대해서는 일관되게 민중 측을 지지해 온 것과는 대조적인 면이다. 이에는 윤민혁이 군사 문제와 정치 문제에 있어서 이중적인 판단 기준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고 자가 진단하고 있다.
  8. 전차병 전투복 이미지가 독일군이라는 데 대해, 장비가 독일 장비라는 데 대해 거부감을 드러내는 묘사 몇 번으로 충분히 면피는 가능했다.
  9. 3기 중반부 및 4기 주요 사건 관련 설정이므로 공개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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